[관광칼럼 82]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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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칼럼 82]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휴가

관리자 2026-10-30 조회수 11


[여행 이야기에서 빠진 사람들]


휴가철이 다가오면 어디로 떠날 것인지 묻는 인사가 자연스럽게 오간다.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일정을 공유하며, 다녀온 곳의 사진을 보여 주는 풍경도 익숙하다.

그러나 모두가 그 대화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고 싶은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떠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어렵거나, 며칠만 일을 쉬어도 생계가 흔들리거나, 돌보는 가족을 대신 맡아 줄 사람이 없을 수 있다.

몸이 불편해 이동과 숙박을 준비하는 일부터 큰 부담이 되는 사람도 있다.

본 칼럼에서는 어디로 떠날 것인지보다 누가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여행의 기회가 넓어졌다는 말은 여행상품이 많아졌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 실제로 쉴 수 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떠나지 않는 것과 떠날 수 없는 것]


집에서 보내는 휴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익숙한 동네를 산책하고, 책을 읽으며, 일상에서 미뤄 두었던 일을 천천히 하는 시간이 충분한 휴식이 될 수 있다.

멀리 떠나지 않았다고 해서 휴가가 부족하거나 실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해 머무는 것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남는 것은 다르다.

여행을 원하지만 비용과 시간, 건강과 돌봄의 문제로 포기한 사람에게 집에서 쉬는 것도 좋다는 말만으로 답할 수는 없다.

그 말이 의도와 달리 떠날 수 없는 조건을 개인의 취향으로 바꾸어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정책은 이 차이를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을 여행자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원하는 사람이 어떤 장벽 앞에서 멈추는지는 살펴야 한다.

떠날 자유만큼 떠나지 않을 자유도 존중하되,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자유라고 부르지는 않아야 한다.


[휴식은 특별한 사람만의 보상이 아니다]


쉬는 시간은 충분히 성공한 뒤에 받는 상이 아니다.

오랫동안 일했으니 겨우 허락받는 사치로만 다룰 일도 아니다.

세계인권선언 제24조는 합리적인 노동시간의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이 권리가 곧 모든 종류의 여행비용을 공공이 부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관광을 이야기할 때 소비할 능력이 있는 사람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출발점이 된다.

국제사회관광기구는 더 많은 사람이 관광에 접근하려면 경제적 장벽뿐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신체적·심리적 장벽도 함께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행상품을 할인하는 일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은 숙박비 지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함께 이동할 사람과 돌봄 지원, 이해하기 쉬운 정보일 수 있다.

휴식의 기회를 넓히려면 사람마다 다른 출발조건부터 보아야 한다.


[여행비보다 무거운 쉬는 비용]


여행을 떠날 때 드는 비용은 교통비와 숙박비만이 아니다.

일을 쉬는 동안 줄어드는 수입과 대체인력을 구하는 부담도 포함될 수 있다.

하루 단위로 소득을 얻는 사람과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며칠의 휴가는 지출의 증가이면서 수입의 중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렴한 여행상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떠날 수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예약한 숙소가 아무리 싸더라도 일을 멈출 수 없다면 여행은 시작되지 않는다.

관광의 기회를 넓히는 정책은 노동정책과 따로 움직이기 어렵다.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조직문화와 업무의 대체체계, 쉬는 동안의 소득 문제를 함께 살펴야 한다.

휴가를 신청했다는 이유로 눈치를 보거나 동료에게 과도한 업무가 넘어간다면 제도상의 휴가는 실제 휴식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관광산업이 더 많은 여행자를 원한다면,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돌봄을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들]


여행을 떠나려면 자신의 일정만 비우면 되는 사람이 있다.

반면 누군가의 식사와 약, 이동과 안전을 먼저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어린 자녀와 장애가 있는 가족,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를 책임지는 사람에게 휴가는 여러 사람의 생활을 다시 조직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함께 여행하더라도 돌봄의 업무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장소만 바뀌었을 뿐 쉬었다고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가족과 떨어져 쉬고 싶다는 마음을 이기적인 생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돌보는 사람에게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관광 지원을 설계할 때는 동반 가족의 편의뿐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휴식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돌봄서비스와 지역의 지원체계, 필요한 정보를 연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여행이 가능해지려면 때로는 여행지 밖에서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누가 대신 돌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어디로 갈 것인가는 다음 순서로 넘어가지 못한다.


[지원금을 받아도 예약할 수 없다면]


여행비를 지원하는 제도는 경제적 부담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원금을 받는 절차와 사용하는 방식이 복잡하면 정작 필요한 사람이 이용하지 못할 수 있다.

온라인 신청과 본인인증, 앱 설치와 전자결제를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사용 가능한 숙소와 교통수단이 제한적이거나 먼저 비용을 지불한 뒤 돌려받는 구조라면 또 다른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지원의 성과를 판단할 때는 몇 명에게 지급했는지만 확인해서는 안 된다.

누가 신청하지 못했고, 누가 선정된 뒤에도 사용하지 못했는지 살펴야 한다.

전화와 방문 상담처럼 다른 신청경로를 마련하고, 이용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예약과 이동을 준비하는 도움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원은 지급을 마쳤을 때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용자가 실제로 원하는 경험에 도달했는지까지 확인할 때 의미가 생긴다.


[도움을 받는 여행에도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공공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여행자의 취향과 의사가 뒤로 밀려서는 안 된다.

어디로 갈지, 누구와 갈지, 어떤 활동을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필요하다.

모든 참여자에게 같은 일정과 같은 방식의 여행을 제공하는 것이 반드시 공정한 것은 아니다.

조용히 쉬고 싶은 사람과 문화시설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 자연을 걷고 싶은 사람의 기대는 다를 수 있다.

지원사업의 홍보를 위해 참여자의 사연과 사진을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일도 신중해야 한다.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자신의 형편을 드러내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되지는 않는다.

참여자는 감사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선택권과 사생활을 가진 여행자다.

사업을 평가할 때도 즐거웠다는 답변만 기대하기보다 불편했던 점과 원하지 않았던 경험을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존엄한 지원은 부족한 비용을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나이만으로 여행의 조건을 알 수 없다]


고령자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이가 같아도 건강과 소득, 돌봄 책임과 사회적 관계는 서로 다르다.

유럽의 고령친화 관광 자료도 여행의 장벽으로 시간 부족과 건강 문제, 경제적 이유를 함께 제시하며, 교통과 숙박 등 이용환경을 개선할 필요를 다룬다.


고령자라고 모두 단체관광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젊은 사람이라고 언제나 빠르고 활동적인 여행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정책은 연령에 따른 공통의 필요를 고려하되 개인의 차이를 지우지 않아야 한다.

혼자 이동하기 불안한 사람에게는 동행과 안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독립적인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통제를 더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묻는 과정이 중요하다.

배려는 상대의 능력을 미리 단정하는 일이 아니라, 필요한 지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


[싼 여행이 해답의 전부는 아니다]


여행 기회를 넓히겠다는 목표가 무조건 낮은 가격을 만드는 경쟁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원상품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숙박과 식사, 교통과 안내에 필요한 비용을 지나치게 줄이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임금과 휴식이 줄어들거나, 안전과 접근성에 필요한 준비가 뒤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휴식을 다른 사람의 과로로 마련하는 방식은 공정한 관광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업을 설계할 때는 적정한 서비스 비용을 인정하고 운영업체와 노동자에게도 합리적인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공공지원이 필요한 이유를 현장의 무리한 할인으로 대신해서는 안 된다.

지역의 작은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는 계약조건과 대금 지급방식도 중요하다.

UN 관광기구와 세계관광연맹은 관광의 편익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고르게 돌아가려면 목표가 분명한 정책과 제도, 운영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행 기회의 확대와 관광을 제공하는 사람의 권리는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비수기는 누구에게 가능한 시간인가]


비수기 여행은 한산한 환경에서 머물고 지역의 관광 수요를 분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 일정과 직장의 휴가 운영, 가족의 돌봄 일정이 여행 가능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

비수기 상품이 저렴하니 그때 떠나면 된다는 설명만으로는 이런 제약을 다룰 수 없다.

지원사업은 저렴한 시기에 참여자를 맞추는 것뿐 아니라 참여자가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교통편과 의료서비스, 관광시설의 운영 여부 역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적다는 장점이 필요한 서비스까지 부족하다는 불편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비수기 관광은 지역사업자에게도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기회가 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가격 인하보다 여행자와 지역이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넓어질 수 있다]


여행의 기회를 보장한다는 말이 반드시 먼 곳으로 이동하게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가까운 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평소 가지 못했던 문화시설과 자연공간을 찾는 경험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다만 가까운 여행을 권한다는 이유로 선택의 범위를 미리 좁혀서는 안 된다.

먼 곳을 가고 싶은 사람에게 가까운 곳으로 만족하라고 말하는 것과, 다양한 거리의 여행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이동거리의 크기보다 자신이 원한 경험을 할 기회가 있었는가이다.

동시에 동네의 공원과 도서관, 문화시설과 안전한 보행공간을 개선하는 일도 필요하다.

휴식의 모든 기회를 숙박과 이동을 동반한 관광에만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쉴 곳이 부족한 사회가 가끔 떠나는 여행만으로 피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여행할 기회와 일상에서 쉴 권리는 서로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넓어져야 한다.


[떠날 수 있었는지보다 어떻게 쉬었는지]


관광 지원의 성과는 참여 인원과 사용금액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평소 여행하기 어려웠던 사람이 실제로 참여했는지, 준비 과정에서 어떤 부담을 겪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자신의 의사에 맞는 선택을 했는지, 안전하고 존중받는 경험이었는지도 중요하다.

여행을 다녀온 뒤 만족했다고 답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중도에 포기하거나 신청하지 못한 사람의 경험도 들어야 한다.

모든 참여자에게 뚜렷한 감동과 변화를 요구할 필요는 없다.

특별한 활동 없이 충분히 잠을 자고, 일을 생각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 있는 휴가일 수 있다.

지원의 목적은 훌륭한 여행후기를 생산하는 데 있지 않다.

일상에서 멀어질 기회가 적었던 사람에게 스스로 시간을 사용할 여지를 넓히는 데 있다.

그 여지가 실제로 생겼는지를 살피는 평가가 필요하다.


[떠날 수 있는 사회를 위하여]


관광산업은 새로운 목적지와 더 매력적인 상품을 제안한다.

그러나 아직 떠나지 못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명소의 목록이 아닐 수 있다.

쓸 수 있는 휴가와 줄어들지 않는 생계, 믿고 맡길 수 있는 돌봄과 이용할 수 있는 교통이 먼저일 수 있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관광은 관광부서만의 과제가 아니다.

노동과 복지, 교통과 보건, 돌봄과 지역정책이 함께 연결되어야 하는 일이다.

기고를 마치며 이렇게 적고 싶다.

좋은 관광사회는 여행상품이 가장 많은 사회가 아니라, 쉬고 싶은 사람이 자신의 형편 때문에 끝없이 휴식을 미루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다음 휴가철에는 어디로 떠날 것인지 묻는 것과 함께 누가 아직 떠날 수 없는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 그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여행비인가, 쉴 시간인가, 돌봄과 이동의 지원인가.

-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도 원하는 여행을 선택하고 사생활을 지킬 수 있는가.

- 그 여행을 제공하는 노동자 역시 제대로 쉬고 존중받는가.

- 그리고 멀리 떠나지 않는 날에도 일상에서 회복할 공간과 시간이 있는가.


그 질문을 시작할 때 관광은 떠날 수 있는 사람의 즐거움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되찾도록 돕는 사회적 기회가 될 수 있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