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칼럼 80] 관광의 성적표를 바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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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인사이트

[관광칼럼 80] 관광의 성적표를 바꿀 시간

관리자 2026-10-28 조회수 13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


축제가 끝나고 관광 성수기가 지나면 지역마다 성과를 발표한다.

방문객이 얼마나 늘었는지, 숙박시설의 객실이 얼마나 채워졌는지, 관광객이 얼마를 소비했는지가 주요한 내용이 된다.

숫자는 복잡한 현실을 빠르게 설명하는 힘이 있다.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하고, 사업의 규모와 변화의 방향을 살피는 데도 필요하다.

그러나 숫자는 무엇을 세었는지에 따라서 서로 다른 현실을 보여 준다.

방문객은 늘었는데 주민의 불편도 커졌다면 어느 쪽이 성과에 포함되어야 할까.

관광 매출은 증가했지만 일하는 사람의 임금과 고용은 나아지지 않았다면 무엇이 성장한 것일까.

관광칼럼 80에서는 좋은 관광을 이야기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좋음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묻고자 한다.

측정의 기준이 달라지지 않으면 관광의 목표도 쉽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세느냐가 정책을 바꾼다]


방문객 수를 가장 중요한 성과로 삼으면 정책은 사람을 더 많이 모으는 쪽으로 움직이기 쉽다.

홍보예산을 늘리고, 대형 행사를 열며, 더 많은 차량과 관광버스를 받아들일 시설을 만들게 된다.

관광객의 소비액을 중심에 두면 지출을 늘릴 상품과 상업시설에 관심이 집중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른 변화가 성적표 밖에 남는다는 데 있다.

주민의 이동시간과 노동자의 휴식, 쓰레기 처리량과 물 사용량을 살피지 않으면 그 부담은 정책의 평가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성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은 예산과 인력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리기 쉽다.

관광의 성적표는 결과를 기록하는 종이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과 기업이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무엇을 뒤로 미룰지 결정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국제 기준도 경제 너머를 보기 시작했다]


관광을 경제적 규모만으로 설명하지 않으려는 변화는 국제 통계의 영역에서도 구체화되고 있다.

2024년 유엔통계위원회는 관광의 경제적·환경적·사회적 측면을 함께 측정하기 위한 ‘관광의 지속가능성 측정 통계체계’를 승인했다.


이 체계는 관광객 지출과 산업의 경제적 기여뿐 아니라 물과 에너지, 폐기물과 온실가스, 고용과 노동, 문화와 지역사회의 인식 등을 연결해서 살피도록 구성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경제지표를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관광으로 얼마를 벌었는지와 함께, 그 수입을 얻는 동안 어떤 자원을 사용하고 어떤 사회적 변화를 만들었는지 보자는 것이다.

또한 국내여행과 국제여행, 숙박여행과 당일방문을 함께 다루며 지역부터 국가와 국제 수준까지 서로 다른 공간 규모를 고려한다.


관광의 영향은 한 가지 숫자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계의 구조에 반영한 셈이다.

지역의 관광정책도 이러한 관점에서 자신의 성과지표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문객이라는 숫자부터 정확해야 한다]


새로운 지표를 만들기 전에 기존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방문객 수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실제로 집계한 대상은 다를 수 있다.

입장권을 구매한 사람을 센 것인지, 특정 구역을 통과한 횟수를 합친 것인지, 통신자료로 방문 규모를 추정한 것인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같은 사람이 여러 차례 방문했을 때 어떻게 처리했는지도 중요하다.

축제장 주변을 지나간 사람과 실제 행사에 참여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다면 숫자의 의미는 더 모호해진다.

따라서 성과를 발표할 때는 집계 방법과 기간, 공간의 범위와 중복 처리 기준을 함께 밝혀야 한다.

추정값이라면 어떤 가정과 자료를 사용했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숫자를 크게 만드는 일보다 같은 기준으로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먼저다.

정확한 설명이 붙은 작은 숫자가 근거를 알 수 없는 큰 숫자보다 정책에 더 유용할 수 있다.


[평균이 가리는 차이]


지역 전체의 관광 매출이 증가해도 모든 상인의 매출이 함께 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유명한 상권과 외곽의 골목, 대형 숙박시설과 작은 민박이 경험한 변화는 서로 다를 수 있다.

관광으로 생긴 일자리 역시 고용기간과 임금, 근무시간에 따라 삶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

주민 만족도도 지역 전체의 평균 하나로만 제시하면 중요한 차이를 놓칠 수 있다.

관광의 수익을 얻는 사람과 소음과 혼잡에 직접 노출된 사람의 평가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균과 함께 분포를 보아야 한다.

누구에게 편익이 집중되고, 어느 동네와 어떤 집단에 부담이 쌓이는지 살펴야 한다.

물론 세부적인 분석이 개인과 작은 사업체의 정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정책에 필요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을 정해야 한다.

공정한 평가는 지역이 전체적으로 좋아졌다는 설명에 멈추지 않고, 그 변화에서 빠진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다.


[효율이 좋아져도 총부담은 늘 수 있다]


환경성과를 평가할 때는 관광객 한 명이나 숙박 한 건을 기준으로 사용량을 비교할 수 있다.

이러한 원단위 지표는 운영의 효율이 개선되었는지 확인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효율이 좋아졌다는 사실만으로 목적지 전체의 부담이 줄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투숙객 한 명이 사용하는 물이 줄어도 전체 투숙객이 크게 늘면 지역의 물 사용량은 증가할 수 있다.

여행 한 번의 배출량이 감소하더라도 이동 횟수가 더 많이 늘면 총배출량은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원단위와 총량을 함께 살펴야 한다.

연간 수치뿐 아니라 물과 교통, 폐기물 처리에 부담이 집중되는 시기의 변화도 중요하다.

관광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 통계체계가 물과 에너지, 폐기물과 배출량을 경제·사회 통계와 연결하는 이유도 이러한 관계를 살피기 위해서다.


효율 개선은 필요한 성과다.

다만 지역이 실제로 감당해야 하는 총부담까지 줄었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주민에게 묻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주민의 의견을 듣는다고 해서 모든 조사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관광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만 물으면 주민이 겪는 복잡한 경험을 담기 어렵다.

어떤 주민은 관광이 지역경제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야소음에는 반대할 수 있다.

다른 주민은 관광객을 환영하지만 단기숙박시설의 확대에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질문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교통과 주거, 환경과 안전, 일자리와 문화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나누어 물어야 한다.

조사 대상과 시기도 일관되게 설계해 변화의 흐름을 살필 필요가 있다.

온라인 설문만으로 의견을 모으면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주민의 목소리가 빠질 수 있으므로 다른 참여방식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견을 받은 뒤 무엇을 바꾸었는지 알려야 한다.

설문조사가 정책을 이미 정한 뒤 동의를 확인하는 절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과와 원인을 구분해야 한다]


어떤 사업 이후 관광객과 매출이 늘었다고 해서 그 증가분이 모두 해당 사업의 성과인 것은 아니다.

날씨와 교통 여건, 연휴 일정과 물가, 주변 지역의 행사처럼 여러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업을 평가할 때는 무엇이 변했는지와 왜 변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가능한 자료를 활용해 이전의 흐름과 비교하고, 비슷한 조건의 다른 지역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은 불확실하다고 밝혀야 한다.

정책의 효과를 신중하게 설명한다고 해서 성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도움이 된 요소를 알아야 다음 사업을 더 잘 설계할 수 있다.

모든 증가를 성공으로 기록하고 모든 감소를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린다면 평가는 학습의 기능을 잃는다.

좋은 성적표는 칭찬을 모으는 문서가 아니라 다음 선택을 개선하는 자료다.


[측정이 작은 사업자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관광의 영향을 자세히 살피려면 현장의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료 제출 요구가 늘어날수록 작은 숙소와 식당, 체험업체에는 행정 부담이 생긴다.

전문 인력이 없는 사업자에게 복잡한 보고서를 반복해서 요구하면 측정 자체가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은 꼭 필요한 정보부터 정하고, 이미 제출한 자료를 중복해서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기록 방식과 용어를 통일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서식과 도구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 상담, 비용 지원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수집한 자료가 개별 사업자를 압박하거나 경쟁업체에 민감한 정보를 노출하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보호장치도 필요하다.

측정은 현장을 감시하기 위한 과제가 아니라 운영을 개선하고 지원의 필요를 파악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자료를 제공한 사업자에게도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결과가 돌아가야 한다.


[숫자가 정책을 움직이게 하려면]


관광지표를 발표하는 것만으로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측정한 결과가 예산과 운영기준, 사업의 확대와 축소에 연결되어야 한다.

혼잡이 심해졌다면 홍보를 더 늘릴 것인지, 방문시간과 이동경로를 분산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주민의 야간소음 피해가 확인되었다면 행사와 영업의 운영조건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물 사용량과 폐기물 발생량이 관리역량을 넘어서고 있다면 관광객을 더 받기 전에 기반시설과 운영방식을 점검해야 한다.

이러한 대응은 문제가 커진 뒤 즉흥적으로 정하기보다 미리 기준과 절차를 논의하는 편이 낫다.

어떤 지표를 어느 수준에서 검토하고 누가 결정할지 주민과 사업자에게 알려야 한다.

숫자는 정책을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가 같은 현실을 놓고 논의할 수 있는 출발점은 될 수 있다.


[잘되지 않은 결과도 공개해야 한다]


성과보고서에는 잘된 사업과 개선된 수치가 먼저 담긴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결과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도 공개되어야 한다.

방문객은 늘었지만 지역 소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그 이유를 살펴야 한다.

시설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용이 적다면 운영과 입지, 접근성과 프로그램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주민의 만족도가 낮아졌다면 조사방식만 탓하기보다 현장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들어야 한다.

공개는 담당자를 비난하기 위한 절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잘되지 않은 결과를 숨기지 않고 다음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자료의 한계와 측정하지 못한 영역도 함께 밝혀야 한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제시하는 성적표보다 무엇을 아직 모르는지 설명하는 성적표가 더 신뢰를 줄 수 있다.

투명성은 좋은 숫자를 내놓는 능력이 아니라 불편한 숫자도 함께 다루는 태도다.


[좋은 관광을 확인하는 방법]


관광에는 사람의 만남과 감동, 기억과 자부심처럼 숫자로 온전히 담기 어려운 가치가 있다.

따라서 측정을 강조한다고 해서 모든 경험을 점수로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통계와 함께 주민의 이야기, 노동자의 경험, 현장 관찰과 지역의 기록을 살펴야 한다.

숫자는 변화의 크기를 알려 주고, 이야기는 그 변화가 사람의 삶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 줄 수 있다.

두 가지를 함께 볼 때 관광의 성적표는 더 충실해진다. 본 칼럼을 마치며 이렇게 적고 싶다.

좋은 관광의 성적표는 얼마나 성장했는지만 보여 주는 표가 아니라, 무엇을 지켰고 누구의 삶을 바꾸었으며 어떤 책임이 남았는지 드러내는 기록이다.


다음에 관광 성과를 발표하는 자료를 만난다면 숫자의 크기보다 먼저 그 기준을 물어야 한다.


- 누구를 세었으며 누구는 빠져 있는가.

- 늘어난 수입과 함께 증가한 비용도 기록되어 있는가.

- 평균 뒤에 가려진 지역과 사람은 없는가.

- 그리고 확인된 문제는 다음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그 질문이 성적표의 중심에 놓일 때 관광은 성장을 증명하는 산업을 넘어, 더 나은 변화를 확인하고 책임지는 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