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
바다 위로 올라오는 돌고래와 숲속을 걷는 코끼리, 갯벌에서 먹이를 찾는 철새를 만나는 일은 여행의 특별한 기억이 된다.
화면과 책에서만 보던 생명을 눈앞에서 바라보면 자연이 얼마나 넓고 다채로운지 실감하게 된다.
동물과의 만남은 여행자에게 경이로움을 주고, 그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을 더 알고 싶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을 좋아한다는 마음이 언제나 동물에게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더 가까이 보고 싶고, 한 번 만져 보고 싶으며,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은 욕구가 동물의 휴식과 이동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을 만나는 여행에서는 여행자의 만족만으로 좋은 경험을 판단하기 어렵다.
본 칼럼에서는 우리가 즐기는 만남을 동물의 입장에서도 바라보고자 한다.
동물을 사랑해서 떠난 여행이 정작 동물에게는 피하고 싶은 시간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동물은 관광의 소품이 아니다]
여행상품은 동물과의 거리를 줄여 주겠다고 약속한다.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고, 손으로 먹이를 주며, 몸을 만지는 경험은 특별한 상품으로 판매된다.
하지만 사람이 원하는 가까움이 동물에게도 편안한 가까움인지는 따로 살펴야 한다.
동물에게는 종에 맞는 먹이와 생활환경, 충분한 휴식과 움직임이 필요하다.
야생동물을 관광객의 촬영과 오락에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시설에서는 부적절한 사육환경과 과도한 접촉이 동물의 복지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광객 앞에서 얌전히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동물이 편안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짧은 체험만으로는 동물이 하루 중 얼마나 쉬는지, 관람객이 없는 시간에는 어디에서 지내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여행자는 눈앞의 장면뿐 아니라 그 장면을 가능하게 만든 운영방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광객을 위한 만남이 동물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한다.
[먹이를 주는 친절의 함정]
여행지에서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동은 쉽게 친절로 받아들여진다.
새가 가까이 날아오고, 물고기가 모여들며, 작은 동물이 손에 든 음식을 받아 가면 여행자는 교감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주는 먹이가 그 동물에게 적절한 먹이라는 보장은 없다.
야생동물에게 지속적으로 먹이를 제공하면 자연적인 행동과 개체군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으며,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국제동물복지기금도 사람의 음식이 야생동물의 건강을 해칠 수 있고, 먹이에 대한 의존이 사람을 향한 공격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먹이를 주고 싶은 마음과 실제로 도움이 되는 행동은 구분해야 한다. 야생동물을 만났을 때는 임의로 먹이를 주기보다 현장의 보호규칙을 따르는 것이 우선이다.
구조와 치료,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담당 기관과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동물에게 필요한 배려는 내가 무언가를 건네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조건을 방해하지 않는 일일 수 있다.
[관찰과 추적은 다르다]
야생동물 관광에서 중요한 것은 동물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는 일만이 아니다.
그곳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얼마나 머물며, 어느 순간 물러날지를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동물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관찰과, 모습을 보여 주도록 몰아붙이는 추적은 다르다.
좋은 만남을 위해서는 동물이 관광객을 피해 이동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사진을 찍지 못했다고 해서 동물의 이동경로를 막거나 더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된다.
멀리 있는 동물을 보기 위해 망원경과 줌 렌즈를 사용하는 것도 거리를 지키는 방법이다.
국제동물복지기금은 야생동물을 멀리서 관찰하고, 동물이 먼저 다가오더라도 함부로 만지지 말 것을 권고한다.
현장의 안전거리와 관찰시간, 접근 제한은 종과 환경에 맞게 정해져야 한다.
여행자는 그 기준을 불필요한 방해물로 여기지 말고, 만남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동물이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패한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을 억지로 불러내지 않고 돌아오는 선택도 책임 있는 관찰의 일부다.
[구조와 보호라는 이름을 살펴야 한다]
동물과의 만남을 운영하는 시설은 다양한 이름을 사용한다. 보호센터와 구조시설, 생태체험장과 교육시설이라는 표현은 여행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름만으로 운영의 실제 모습을 알 수는 없다. 어떤 동물을 왜 보호하고 있는지, 수의학적 관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관람과 체험이 보호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관광객이 직접 만지고 사진을 찍는 프로그램이 시설 운영의 중심이라면 더욱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국제동물복지기금은 오락을 위한 이용보다 동물복지와 보전, 재활을 우선하는 기관을 찾도록 권고한다.ifaw
시설은 보호의 목적과 운영방식을 여행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기부금과 체험비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가능한 범위에서 공개해야 한다.
보호라는 말은 홍보 문구가 아니라, 실제 관리와 책임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여행자 역시 감동적인 소개글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질문하고 확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보전과 복지는 함께 보아야 한다]
동물 관광을 설명할 때 흔히 자연보전과 교육의 가치가 강조된다. 관광수입을 통해 서식지를 관리하고, 지역주민에게 일자리를 만들며, 방문객에게 생태계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중요하다. UN 관광기구도 보호지역의 관광은 그 지역의 보호 목적에 기여해야 하며, 이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보전에 기여한다는 주장만으로 개별 동물의 고통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종을 지키는 목표와 눈앞의 동물이 적절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문제는 함께 검토해야 한다.
교육 역시 동물을 가까이 만지는 경험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해설과 관찰, 영상과 기록을 통해서도 동물의 행동과 서식지, 인간과의 관계를 배울 수 있다.
교육의 성과는 체험이 얼마나 자극적이었는지보다 방문객이 무엇을 이해하고 어떤 행동을 바꾸었는지로 물어야 한다.
동물을 지킨다는 명분과 실제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일치할 때 관광의 설명도 설득력을 갖는다.
[동물 곁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야생동물이 있는 곳에는 그 동물과 같은 환경을 공유하는 주민이 있다.
여행자에게는 특별한 관찰 장소지만, 주민에게는 농사를 짓고 물을 구하며 가족을 돌보는 생활의 터전이다.
관광을 통한 보전을 이야기할 때 주민을 풍경의 일부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누가 토지와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지, 관광사업의 수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현장의 규칙을 누가 결정하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
유엔환경계획은 야생동물에 기반한 경제에서 지역공동체를 중심에 두는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역주민이 해설과 숙박, 교통과 관리 업무에 참여하고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보호의 책임만 주민에게 요구하고 관광수입은 외부 사업자가 가져가는 구조라면 지속적인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동물을 보호하는 일과 주민의 생계를 존중하는 일은 서로 경쟁하는 목표로만 다뤄져서는 안 된다.
관광은 두 목표를 함께 실현할 운영방식과 수익배분 구조를 찾아야 한다.
[체험을 파는 기업의 책임]
여행자는 예약 화면만으로 현장의 모든 상황을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사와 예약 플랫폼의 책임도 중요하다.
동물과 가까이 만날 수 있다는 장점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인지 알려야 한다.
동물을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활동이 포함되는지, 관찰규칙은 무엇인지, 운영기관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제기된 프로그램은 판매를 계속하기 전에 사실관계와 운영조건을 점검해야 한다.
판매량이 많다는 이유로 검토를 미뤄서는 안 된다.
UN 관광기구와 세계여행관광협의회 등이 참여한 자연친화적 관광 논의도 기업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줄이며, 생물다양성의 보호와 복원에 투자하는 방향을 제시한다.untourism+1
이러한 책임은 기업이 직접 소유한 시설에만 한정될 일이 아니다.
여행상품으로 판매하고 수익을 얻는 활동이라면 협력업체의 운영방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행자의 선택을 돕는 정보는 광고의 작은 글씨가 아니라 상품 설명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지역의 관리가 필요하다]
동물 관광을 여행자의 양심과 사업자의 자율에만 맡길 수는 없다.
지역과 관리기관은 서식지의 특성과 동물의 상태를 고려해 관광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
어디에 접근할 수 있는지, 관찰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어떤 활동은 허용하지 않을지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동물의 상태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관찰을 중단할 수 있는 절차도 있어야 한다.
관광객을 더 받는 일보다 보호가 우선인 순간을 인정해야 한다.
해설사와 운항자, 시설 종사자에게는 관련 교육과 현장 대응 역량이 필요하다.
관광객이 규칙을 어겼을 때 현장 노동자가 혼자 갈등을 감당하지 않도록 사업자와 관리기관의 지원도 마련되어야 한다.
규칙은 안내판에 적혀 있다는 사실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운영자가 지킬 수 있고 방문객이 이해할 수 있으며, 위반했을 때 실제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보호구역의 관광이 보호 목적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현장의 인력과 예산, 관리체계로 이어져야 한다.
[기념품에도 생명의 흔적이 있다]
동물과 관련된 관광의 책임은 체험이 끝나는 순간 사라지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구매하는 기념품에도 야생생물과의 관계가 담겨 있을 수 있다.
낯설고 희귀하다는 이유로 고른 물건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판매자가 괜찮다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유엔환경계획은 여행 중 야생생물 제품의 판매가 의심되는 상황을 보거나 발견하면 현지 경찰이나 여행 운영자에게 알리도록 안내한다.
출처와 합법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야생생물 유래 제품은 구매하지 않는 편이 책임 있는 선택이다.
지역 공예와 생산자의 노동을 존중하는 소비는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희귀한 생명을 소유해야만 특별한 여행의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져갈 기념품이 그 장소의 생명을 줄이는 물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지 못한 것도 존중하는 여행]
동물을 만나는 여행에는 기다림과 불확실성이 있다. 예상했던 장소에 동물이 없을 수 있고, 멀리에서 잠깐 모습을 드러낸 뒤 사라질 수도 있다.
그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동물을 유인하고 붙잡아 두기 시작하면 관광은 관찰에서 통제로 바뀐다.
여행자는 모든 순간을 구매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입장료와 체험비를 냈다는 사실이 동물에게 다가가고 만질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좋은 운영자는 만남의 한계를 미리 설명하고, 좋은 여행자는 그 한계를 존중한다.
동물을 보지 못한 날에도 서식지와 계절, 먹이와 이동에 관한 이야기를 배울 수 있다.
그 장소에 생명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본 칼럼을 마치며 이렇게 적고 싶다.
좋은 동물 관광은 사람과 동물의 거리를 무조건 좁히는 관광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거리를 배우는 관광이다.
다음 여행에서 동물 체험을 예약하기 전에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 이 동물은 관광객을 피해 쉬거나 물러날 수 있는가.
- 내가 지불한 돈은 동물의 삶과 서식지, 지역주민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 나는 가까이에서 보지 못하더라도 규칙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 이 만남은 동물에게도 견딜 만한 만남인가.
그 질문을 잊지 않을 때 여행은 생명을 즐거움의 도구로 사용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 될 수 있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