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칼럼 77] 인공지능이 추천한 여행은 누구의 여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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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인사이트

[관광칼럼 77] 인공지능이 추천한 여행은 누구의 여행인가

관리자 2026-10-23 조회수 31


[여행의 새로운 안내자]


여행을 계획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안내책자만 펼쳐 보지 않는다.

검색창에 목적지와 날짜, 취향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은 항공권과 숙소, 맛집과 이동경로, 여행일정까지 빠르게 제안한다.

번역 앱은 낯선 언어를 읽게 해 주고, 챗봇은 밤늦게도 예약과 환불, 관광정보를 안내한다.

인공지능은 여행을 더 쉽고 편리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특히 정보가 부족한 여행자와 언어장벽을 느끼는 외국인, 디지털 마케팅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 관광사업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

UN 관광기구와 OECD도 인공지능이 관광의 혁신과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개인정보 보호와 소비자 보호, 노동 전환과 중소기업 지원을 함께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편리한 추천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공지능이 추천한 여행은 정말 나의 선택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데이터와 광고비가 설계한 선택인가.


[추천은 중립적이지 않다]


인공지능은 여행자가 검색한 단어와 클릭한 상품, 이전 예약과 위치정보, 후기와 결제기록을 바탕으로 다음 선택을 예측한다.

겉으로 보면 여행자에게 꼭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추천 결과는 완전히 중립적일 수 없다.

어떤 숙소와 식당이 먼저 보이는지는 플랫폼의 계약 구조와 광고비, 데이터의 양과 평점, 알고리즘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검색 결과 상단에 나온다는 사실이 그곳이 가장 좋은 장소라는 뜻은 아니다.

그곳이 더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거나, 더 많은 광고비를 지불했거나, 플랫폼의 기준에 더 잘 맞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작은 마을의 식당과 독립서점, 주민이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은 추천 목록에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디지털 광고비와 후기 관리, 다국어 콘텐츠 제작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면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여행자는 인공지능의 추천을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제안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추천 목록 밖에도 지역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장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화는 편리함과 감시 사이에 있다]


인공지능은 개인화된 여행을 약속한다.

채식 식당을 찾는 사람에게는 식단에 맞는 메뉴를, 유아 동반 가족에게는 이동이 편한 숙소를,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접근 가능한 동선을 추천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은 여행자의 불편을 줄이고 접근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개인화된 추천은 많은 데이터 위에서 작동한다.

어디를 검색했는지, 언제 이동했는지, 어떤 음식과 숙소를 선택했는지, 누구와 여행하는지에 관한 정보가 수집되고 분석될 수 있다.

여행 데이터는 단순한 소비기록이 아니다.

그 안에는 건강과 종교, 가족관계와 생활방식, 소득 수준과 이동패턴처럼 민감할 수 있는 정보가 담길 수 있다.

유네스코의 인공지능 윤리 권고는 인공지능의 전 생애주기에서 개인정보와 데이터 보호를 존중해야 하며, 투명성과 공정성, 인간의 감독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행자는 편리한 추천을 받는 대신 어떤 정보가 수집되는지, 누구와 공유되는지, 얼마나 오래 보관되는지 알 권리가 있다.

관광기업과 플랫폼은 긴 이용약관 뒤에 책임을 숨기지 말고, 필요한 데이터와 사용 목적을 쉬운 말로 알려야 한다.


[인공지능이 편견을 배울 때]


인공지능은 사람이 만든 데이터를 학습한다. 그래서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편견과 불평등도 함께 배울 수 있다.

과거의 예약과 후기, 가격과 위치 데이터를 그대로 활용하면 특정 지역과 계층, 국적과 언어권에 불리한 추천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비싼 상품을 먼저 보여 주거나, 특정 지역을 위험한 곳처럼 과도하게 분류하며, 비주류 언어를 쓰는 여행자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장애인과 고령자, 저소득 여행자,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인공지능 기반 관광서비스에서 배제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최신 스마트폰과 신용카드, 빠른 인터넷과 디지털 문해력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관광은 더 편리해지는 대신 더 좁아질 수 있다.

유네스코는 인공지능이 차별을 강화하지 않도록 공정성과 비차별, 포용성과 인간의 감독을 핵심 원칙으로 제시한다.

관광기업은 인공지능이 누구에게 어떤 상품을 추천하고, 어떤 고객을 놓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기술이 자동으로 내린 판단이라 해도 차별의 책임까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라지는 관광]


호텔 프런트의 챗봇과 무인 체크인, 자동번역과 로봇 안내, 인공지능 고객센터는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반복적인 문의를 줄이고, 예약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며, 다국어 기본 안내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관광에서 사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여행자는 예약번호만 처리받는 소비자가 아니다.

낯선 장소에서 길을 잃고, 건강이 나빠지고, 항공편이 취소되며, 예상하지 못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재난과 사고, 차별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 챗봇의 정해진 답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관광의 환대는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상대의 불안을 알아차리고, 상황에 맞게 설명하며, 책임 있게 해결책을 찾는 사람의 역할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은 노동자를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반복적 업무를 줄여 노동자가 더 중요한 돌봄과 안전, 현장 문제 해결에 집중하도록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기술 도입으로 일자리가 줄거나 업무강도가 높아질 때, 기업은 노동자에게 전환교육과 재배치, 충분한 협의와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


[작은 사업자는 보이는가]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반 관광은 대기업에 더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

대형 호텔과 플랫폼은 방대한 예약 데이터와 광고예산, 기술 인력과 자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반면 작은 숙소와 지역 식당, 독립 가이드와 농어촌 체험마을은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비용과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이 여행자의 첫 번째 안내자가 될수록, 추천 목록에 보이지 않는 사업자는 시장에서 사라질 위험이 커진다.

관광의 디지털 전환이 곧 대형 플랫폼에 대한 의존을 뜻해서는 안 된다.

지방정부와 관광기관은 지역의 소상공인이 사진과 예약정보, 접근성·가격·운영시간을 쉽게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공동 예약시스템과 디지털 교육, 공정한 수수료 체계와 데이터 활용 지원도 필요하다.

UN 관광기구는 인공지능 도입에서 혁신뿐 아니라 포용성, 지속가능성, 데이터 윤리와 중소기업의 역량 강화를 함께 다뤄야 한다고 제안한다.

기술의 경쟁력은 가장 큰 기업이 더 많은 데이터를 쌓는 데만 있지 않다.

작은 사업자와 지역공동체도 공정하게 발견되고 선택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관광지는 데이터 광산이 아니다]


관광지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와이파이 접속기록, CCTV와 스마트 교통시스템, 관광 앱과 온라인 결제, 숙박 예약과 후기에는 여행자의 움직임이 남는다.

이 데이터는 혼잡을 관리하고 대중교통을 개선하며, 재난 상황에서 사람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의 목적이라는 이유로 모든 데이터를 무제한 수집하고 감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과 주민은 언제 어떤 정보가 수집되는지, 왜 필요한지, 누구에게 제공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는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만 수집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며, 목적이 끝나면 삭제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특히 관광객의 위치와 동선은 주민의 정보와 결합될 때 개인의 사생활을 드러낼 위험이 있다.

관광정책을 위한 데이터 활용에도 주민과 관광객의 동의, 독립적인 감시와 책임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

편리한 스마트관광이 사람을 더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관광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짜 정보가 만드는 진짜 피해]


생성형 인공지능은 여행 일정과 소개글, 사진과 영상까지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기술은 작은 관광사업자가 홍보콘텐츠를 제작하고, 여행자가 다양한 언어로 정보를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사실과 다른 영업시간과 교통정보, 존재하지 않는 식당과 관광지를 만들어 낼 위험도 있다.

실제로 없는 장소를 추천하거나, 폐업한 숙소를 소개하고, 안전하지 않은 이동경로를 안내한다면 여행자는 시간과 비용을 잃는 데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재난과 기상, 교통통제처럼 안전과 연결된 정보가 잘못 제공되면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여행자는 인공지능이 제시한 정보라 해도 공식 관광기관과 교통회사, 숙소와 시설의 최신 안내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관광사업자와 지방정부도 정확한 정보를 여러 언어로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잘못된 정보가 발견됐을 때 빠르게 바로잡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그럴듯하게 말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증거가 아니다.


[여행자는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인공지능이 모든 여행자의 선택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여행자는 추천을 거절하고, 자동화된 일정 대신 스스로 여행을 설계하며,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을 선택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만든 일정표가 편리하더라도, 여행자가 왜 이 장소를 추천받았는지 이해하고 다른 선택지를 탐색할 수 있어야 한다.

예약 플랫폼은 광고상품과 일반 검색결과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개인화 추천을 끄는 기능과 데이터 삭제를 요청하는 방법, 사람 상담원에게 연결되는 통로도 쉽게 제공해야 한다.

디지털 서비스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인간의 선택권과 통제권까지 넘겨서는 안 된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추천이 아니라, 추천을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질문]


인공지능은 관광을 더 빠르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더 빠른 예약과 더 정확한 추천이 더 좋은 관광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관광의 목적은 여행자를 오래 머물게 하고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여행자가 안전하고 존중받으며, 지역주민과 노동자, 자연환경도 함께 보호받는 경험을 만드는 데 있다.

기술은 이 목적을 돕는 수단이어야 한다.

기술 자체가 관광의 목적이 되는 순간, 여행자는 데이터가 되고 지역은 상품 목록이 되며, 사람의 목소리는 알고리즘 뒤로 밀려날 수 있다.

본 칼럼을 마치며 이렇게 적고 싶다.

좋은 인공지능 관광은 여행자를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여행자가 더 안전하고 공정하며 책임 있게 선택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다음 여행에서 인공지능의 추천을 받을 때 우리는 몇 가지를 물어야 한다.


- 왜 이 숙소와 식당, 이 동선이 나에게 추천되었는가.

- 이 추천에는 광고비와 플랫폼의 이익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

- 내 여행 데이터는 어디에 저장되고 누구와 공유되는가.

- 추천 목록 밖의 지역사업자와 주민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가.

- 그리고 자동화된 편리함 속에서도 나는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가.


그 질문을 시작할 때 인공지능은 여행을 대신 결정하는 주인이 아니라, 더 나은 여행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