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 전망대, 케이블카.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마주치는 풍경들이다. 개장식 날은 인산인해를 이루다가도, 몇 달이 지나면 텅 빈 공간으로 남는 시설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다.
시설은 그대로인데, 관광은 사라진 풍경. 많은 지역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 지역관광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까.“
이 질문의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문제는 무엇을 지었느냐가 아니라, 왜 지었고 누가 운영하느냐에 있다.
관(官) 주도의 함정
지역관광 사업은 대개 관 주도로 시작된다. 지자체가 예산을 편성하고, 공모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고, 시설을 짓고, 행사를 연다. 문제는 예산이 끊기면 사업도 함께 끝난다는 점이다.
행정의 성과 지표는 대개 "얼마를 지었는가", "예산을 얼마나 집행했는가"에 맞춰져 있다. "누가 어떻게 운영해 어떤 가치를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은 뒤로 밀린다.
그 결과, 1~2년 만에 방문객이 급감하는 시설들이 반복적으로 생겨난다. 테마공원, 야경단지, 체험시설 모두 개장 초기에는 붐비다가 어느새 한산한 공간이 된다.
도서관, 박물관, 문화센터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은 공공 중심으로 운영되고, 민간의 자발적 참여와 수익 모델은 약하기 때문이다.
타깃의 불명확성
"누구를 위한 관광인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는 지역은 드물다. '다 오면 좋다'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시설과 콘텐츠가 늘어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접 광역도시에 사는 주말 여행자, 당일·1박 여행자, 로컬 스토리를 찾는 소규모 팀이 핵심 타깃이다. 이들은 먼 여행지보다 가까운 지역에서 더 자주 새로운 경험을 찾는다.
타깃이 불명확하면 상품도, 동선도, 홍보도 흐릿해진다. 광역도시 근교의 중소 지자체에서 이 문제가 특히 두드러진다.
KTX나 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성이 좋아졌다는 이유만으로 관광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 방문자는 주말에만 몰리고 평일엔 한산한 상태가 반복된다.
사람과 운영의 부재
시설은 있는데, 이를 해석하고 운영할 사람과 조직이 없다.
관광의 가치는 자원의 크기보다 해석의 방식에서 결정된다. 무엇이 있느냐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관광기획자, 해설사, 로컬 운영자에 대한 투자와 육성은 뒤로 밀려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인력 부족이 아니다. 지역에 관광을 기획하고 운영할 전문 인력과 조직이 부재하다는 의미다.
로컬 크리에이터, 지역관광기획자, 커뮤니티 매니저 등 지역관광을 지속 가능하게 이끌 핵심 인력이 성장할 토양이 부족한 것이다.
방문자 경제의 결여
"관광객은 오지만 돈을 쓰지 않고, 평일엔 수요가 없다."
이 말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신호다. 관광객 수를 늘리는 양적 성장에 집중하다 보니, 체류 시간과 소비, 재방문을 중심으로 한 방문자 경제 설계가 부족하다.
방문자 경제 관점은 관광객이 단순히 구경하는 존재가 아니라, 체류하고 소비하며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경제 주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 관점이 부족하면, 관광객 수만 늘리고 체류 시간과 소비는 늘리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성공하는 지역의 공통 설계도
그렇다면 성과를 내고 있는 지역은 무엇이 다른가. 성공 사례를 보면 몇 가지 공통된 설계 요소가 반복된다.
첫째, 타깃을 재정의한다. 성공하는 지역은 "누가 우리 지역을 가장 자주, 가장 현실적으로 찾을 수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
대형 관광버스와 외국인 단체보다, 인접 광역도시에 사는 주말 여행자, 당일·1박 여행자, 로컬 스토리를 찾는 소규모 팀이 핵심 타깃이다.
전통시장과 골목을 무대로 도보해설과 체험을 엮어 재방문을 이끌어낸 사례를 보자. 타깃은 거창한 해외 관광객이 아니라 인근 도시의 생활권 방문자였다.
이들은 먹고 보고 끝나는 관광이 아니라, 지역의 사람과 이야기를 통해 자신만의 기억을 만들고자 했다.
둘째, 지역을 이야기가 아닌 생태계로 설계한다.
성공하는 지역은 특정 시설 하나, 특정 콘텐츠 하나로 승부하지 않는다. 지역의 삶과 정체성을 이야기로 엮어내고, 그 이야기 속에 여러 상품과 서비스를 배치한다.
전남 목포는 '맛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전통시장, 로컬 식당, 카페, 게스트하우스, 야경 코스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인제군은 DMZ 평화 관광을 중심으로 생태, 역사, 체험, 숙박을 엮어내고 있다.
이렇게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러 요소가 연결될 때, 관광은 단순 방문을 넘어 체류와 소비로 이어진다.
셋째, 사람과 조직을 키운다. 운영 역량의 핵심은 결국 사람과 조직이다. DMO(Destination Management Organization)는 단순 홍보단체가 아니라, 지역관광의 설계자이자 운영자 역할을 한다.
강릉 DMO와 같은 사례에서, 공공이 모든 것을 직접 운영하기보다, 민간과 함께 지역 관광 생태계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구조가 주목받고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에게는 창업 공간과 멘토링을, 해설사에게는 전문 교육과 인증 체계를, 운영 매니저에게는 사업 기획과 예산 관리 역량을 강화한다.
시설이 아닌 사람과 조직에 투자한 지역일수록, 관광은 지속되고 축적된다.
넷째, 사업이 아닌 구조를 바꾼다. 지속 가능한 지역관광은 단년도 사업 성과가 아니라, 수익 모델과 거버넌스 구조에서 나온다. 보조금이 끊겨도 이어지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체험료, 투어 상품, 로컬 브랜드 상품, 야간 콘텐츠, 교육·워크숍 등 다양한 수익원을 설계하고, 이를 통해 지역 내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야 한다.
평가는 "얼마를 지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운영해 어떤 성과를 냈느냐"로 바뀌어야 한다.
예산 집행율이 아니라 방문자 체류 시간, 소비, 재방문율, 주민 만족도, 참여 정도가 성과 지표가 되어야 한다.
이 지표를 중심으로 공공·민간·주민이 함께 논의하는 거버넌스 구조가 만들어질 때, 지역관광은 비로소 사업이 아니라 체질 개선으로 이어진다.
당신 지역의 첫걸음은
관광은 이벤트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다. 그리고 운영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과 구조의 문제다. 더 많이 짓는 방식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지 다시 질문해야 할 시점이다.
지역마다 상황과 맥락은 다르다. 그렇기에 "정답"은 없지만, 공통 설계도는 분명히 있다. 이제 각 지역은 이 설계도를 자신의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화려한 슬로건이 아니라, 조금 느리지만 꾸준한 변화다.
당신의 지역은 무엇을 먼저 바꿀 것인가. 오늘의 작은 설계 변경이, 내일의 지역관광을 바꿀 수 있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