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제가 넘쳐나는 계절]
봄에는 벚꽃과 유채꽃이 피고, 여름에는 바다와 맥주, 음악과 불꽃이 사람을 부른다.
가을에는 단풍과 지역 먹거리, 겨울에는 눈과 빛, 얼음과 해넘이를 주제로 한 축제가 이어진다.
지역축제는 이제 지방정부의 중요한 관광정책이자 지역을 알리는 대표적인 수단이 됐다.
한동안 조용하던 마을과 도시에 사람이 몰리고, 상점과 식당, 숙박업소에는 활기가 돈다.
축제는 지역의 이름을 알리고 주민에게 자부심을 주며, 지역 농산물과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축제 현장의 화려함만으로 성공을 말하기는 어렵다.
축제가 끝난 뒤 지역에 무엇이 남는지,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불편과 비용을 떠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관광칼럼 69에서는 이렇게 묻고 싶다.
지역축제는 정말 지역의 잔치인가, 아니면 지역을 배경으로 한 소비 행사가 되고 있는가.
[사람이 많이 왔다고 성공은 아니다]
축제가 끝나면 흔히 가장 먼저 발표되는 숫자는 방문객 수다.
몇십만 명이 다녀갔고, 전년보다 몇 퍼센트 늘었으며, 경제효과가 얼마였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방문객 수와 소비액은 물론 중요한 지표다.
관광객이 지역 식당과 숙소, 상점에서 돈을 쓰면 지역경제에 활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왔다는 사실만으로 축제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료 셔틀버스와 대규모 홍보, 유명 연예인 공연으로 하루 방문객을 늘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방문객이 지역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지역 상점과 주민에게 실제로 얼마를 썼는지, 축제 이후 다시 찾을 이유가 생겼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관광버스를 타고 들어와 공연을 보고, 외부 프랜차이즈에서 음식을 사고, 쓰레기만 남긴 채 떠난다면 지역경제에 남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더구나 축제 예산과 교통 통제, 청소와 안전관리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면 방문객 수가 많아도 주민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축제의 성공은 인파의 크기가 아니라 지역에 남는 가치의 크기로 평가해야 한다.
[주민은 손님이 아니다]
축제가 열리는 장소는 대개 주민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시장과 골목, 공원과 하천, 학교 앞 도로와 주택가가 축제의 무대가 된다.
그러나 주민이 축제의 준비와 결정 과정에서는 빠지고, 행사 당일에는 교통통제와 소음, 주차난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집 앞 도로가 막히고, 밤늦도록 음악이 울리며, 쓰레기와 불법주차가 늘어나도 주민은 “지역을 위해 참아야 한다”는 말을 듣기 쉽다.
축제가 지역을 위한 행사라면 주민은 불편을 감수하는 배경이 아니라, 축제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여야 한다.
행사 날짜와 시간, 장소와 규모, 교통대책과 소음 기준, 수익의 사용처를 주민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
특히 축제장 인근에서 살아가는 고령자와 영유아 가정, 장애인과 자영업자, 야간 노동자처럼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
주민의 반대가 무조건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 속에는 축제가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해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좋은 축제는 주민을 관객석에 앉히지 않는다.
주민이 무대의 주인으로 참여하고, 축제가 끝난 뒤에도 일상의 삶이 더 나아졌다고 느끼게 한다.
[지역문화가 장식이 될 때]
많은 축제는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내세운다.
전통음식과 민속공연, 지역 설화와 역사 인물, 농산물과 수산물, 지역 예술가의 작품이 축제의 소재가 된다.
이것은 지역문화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역문화가 관광객을 끌기 위한 장식으로만 소비될 때 문제가 생긴다.
복잡한 역사와 주민의 기억은 몇 분짜리 공연으로 단순화되고, 의례와 생활문화는 사진을 찍기 위한 체험으로 바뀌며, 전통은 판매 가능한 기념품의 문양으로만 남을 수 있다.
문화는 관광객에게 보여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문화는 오랫동안 주민의 삶과 관계, 노동과 기억 속에서 이어져 온 것이다.
축제는 지역문화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역의 문화주체와 예술인, 원로와 청년이 중심에 서야 한다.
외부 기획사가 짧은 기간에 만든 프로그램이 지역의 이야기를 대신하기 시작하면 축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행사로 변한다.
지역축제의 고유성은 화려한 무대장치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역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자기 삶과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생긴다.
[외부업체만 남는 구조]
축제가 커질수록 무대와 음향, 조명과 안전요원, 홍보와 판매부스 운영을 외부 전문업체에 맡기는 일이 늘어난다.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예산 대부분이 외부 업체와 유명 공연팀, 대형 행사기획사에 지급되고 지역 주민에게는 단기 아르바이트와 불편만 남는다면, 축제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사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역의 식당과 농가, 공예가와 예술인, 청년 창업가와 사회적기업이 축제의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먹거리 부스에 지역 식재료가 사용되는지, 기념품이 실제 지역 생산자의 손에서 만들어졌는지, 공연과 전시의 기회가 지역 예술인에게도 공정하게 돌아가는지 살펴야 한다.
지역업체를 참여시키는 일은 단지 지역색을 더하는 방법이 아니다.
축제에 쓰이는 예산이 지역 안에서 순환하도록 만드는 경제정책이다.
축제 계약과 예산집행도 투명해야 한다.
누가 얼마를 받고, 지역사업자가 어느 정도 참여했으며, 축제 수익이 어디에 쓰였는지 주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축제의 경제효과는 홍보자료 속 큰 숫자가 아니라, 축제 이후 지역의 통장과 일자리, 거래 관계에 실제로 남는 변화로 증명되어야 한다.
[일회용 즐거움의 비용]
축제장에는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쌓인다.
일회용 컵과 접시, 수저와 포장용기, 생수병과 현수막, 홍보물과 남은 음식이 축제가 끝난 뒤 처리 대상이 된다.
축제가 지역의 자연과 먹거리, 계절의 아름다움을 내세우면서도 폐기물을 무더기로 남긴다면 그 축제는 스스로의 주제를 부정하는 셈이다.
특히 해변과 하천, 산과 공원에서 열리는 축제는 쓰레기와 소음, 차량 증가가 생태계에 직접적인 부담을 줄 수 있다.
불꽃놀이와 야간조명, 드론과 확성기 역시 야생동물과 주민의 휴식을 방해할 수 있다.
친환경 축제는 종이 빨대 몇 개를 사용하는 행사가 아니다.
처음부터 일회용품을 덜 쓰도록 설계하고, 다회용 컵과 식기를 회수·세척하는 체계를 만들며,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정확히 분리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행사다.
무대와 부스, 안내물도 한 번 쓰고 버리는 구조에서 벗어나 재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축제의 환경비용을 청소노동자와 주민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충분한 인력과 예산, 안전한 노동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친환경 구호는 결국 현장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안전은 행사의 부속물이 아니다]
축제는 많은 사람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 모이는 행사다.
즐거움이 커질수록 안전관리의 책임도 커진다.
좁은 골목과 경사진 길, 출입구가 적은 장소, 무대 앞에 집중된 인파는 작은 혼란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행사 주최 측은 관람객 수를 늘리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해당 공간이 안전하게 감당할 수 있는 인원부터 계산해야 한다.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시간대별로 방문을 분산하며, 혼잡 구역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비상구와 대피로를 확보하고, 경찰과 소방·의료기관, 교통기관과 상인회, 주민조직이 같은 정보체계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안내방송은 현지어만이 아니라 외국인 방문객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장애인과 고령자, 어린이 동반 가족이 안전하게 이동하고 대피할 수 있는 동선도 따로 점검해야 한다.
안전은 사고가 난 뒤 책임을 묻기 위한 문서가 아니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행사 규모와 공간, 운영방식을 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관광객이 많이 왔다는 자랑보다, 모두가 안전하게 돌아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축제의 성과가 되어야 한다.
[축제노동의 얼굴]
축제가 열리는 며칠 동안 수많은 사람이 일한다.
무대를 설치하는 노동자와 교통을 안내하는 사람, 음식을 조리하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람, 화장실을 관리하고 주차를 통제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축제의 화려한 조명 뒤에서 일하는 노동은 종종 보이지 않는다.
단기간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행사 특성상 긴 노동시간과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계약과 안전 사각지대가 생기기 쉽다.
지역축제가 지역을 위한 행사라면 축제노동자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적정한 인력 배치와 휴게시간, 안전장비와 산재예방, 공정한 임금과 명확한 업무 범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청소와 경비, 조리와 판매, 임시시설 설치 같은 업무를 맡는 노동자에게 위험과 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역을 위해 봉사한다”는 말이 무급노동과 저임금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축제의 감동은 누군가의 과로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지역축제의 품격은 유명 가수가 누구였는지가 아니라, 그 행사를 함께 만든 사람들이 얼마나 안전하고 공정하게 일했는지에서 드러난다.
[매년 새로울 필요는 없다]
지역축제는 해마다 더 큰 무대와 더 많은 프로그램, 더 유명한 출연진을 경쟁하듯 내세운다.
그러나 축제의 지속가능성은 매년 규모를 키우는 데 있지 않다.
비슷한 축제가 같은 시기에 열리고, 어느 지역에서나 비슷한 먹거리와 공연이 반복된다면 관광객의 관심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때로는 축제의 규모를 줄이고, 개최 횟수를 조절하며, 주민과 방문객이 충분히 머무르고 대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지역의 계절과 생산 리듬, 주민의 생활을 존중하는 작은 축제가 오히려 더 깊은 기억을 남길 수 있다.
관광객이 많이 오지 않아도 지역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지역에서 생산한 음식을 먹으며, 다시 찾고 싶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축제는 이미 성공에 가까워져 있다.
축제는 매년 반드시 열려야 하는 행사가 아니다.
지역이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예산, 환경과 주민의 동의를 기준으로 열릴 때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축제 이후에 남는 것]
좋은 축제는 끝난 뒤에도 남는다.
축제에서 만난 지역 생산자와 가게, 예술가와 주민을 다시 찾게 만들고, 지역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게 만든다.
축제 기간에만 쓰이던 공간과 시설이 주민의 문화공간과 휴식공간으로 남고, 축제의 수익이 지역의 돌봄과 교육, 환경과 문화 보전에 쓰인다면 축제는 지역의 자산이 된다.
반대로 축제가 끝난 뒤 텅 빈 행사장과 쓰레기, 적자와 피로, 주민 갈등만 남는다면 그 축제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축제의 평가는 행사 당일의 열기보다 행사 이후의 변화를 봐야 한다.
주민은 더 살기 편해졌는가.
지역 상권은 지속적인 손님을 얻었는가.
청년과 예술가에게 새로운 활동 기회가 생겼는가.
자연과 문화유산은 더 잘 보호되고 있는가.
축제의 다음 해는 지난해보다 더 화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해보다 더 공정하고 안전하며 지역다운 모습이어야 한다.
[지역의 잔치가 되기 위해]
지역축제는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단발성 이벤트에 머물 필요가 없다.
주민의 삶과 문화, 지역경제와 자연환경을 연결하는 공공의 장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문객 수보다 주민의 만족을 먼저 묻고, 홍보보다 안전을 먼저 준비하며, 외부의 화려함보다 지역의 이야기를 먼저 살려야 한다.
관광객은 축제의 손님이다.
그러나 주민은 축제가 열리는 장소의 주인이다.
손님이 많아지는 일이 주인의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 축제는 오래 사랑받기 어렵다.
본 칼럼을 마치며 이렇게 적고 싶다.
좋은 지역축제는 지역을 보여 주는 행사가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를 더 아끼고 더 잘 살아가게 만드는 과정이다.
다음 축제에서 우리는 공연 시간표와 먹거리 목록만 확인하지 말고, 몇 가지를 더 물어야 한다.
- 이 축제는 주민이 함께 결정했는가.
- 수익은 지역에 남는가.
- 쓰레기와 소음, 교통과 안전의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 축제를 만든 노동자는 존중받았는가.
- 그리고 축제가 끝난 뒤 이 마을은 더 살기 좋아지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축제는 관광객을 위한 구경거리를 넘어 진정한 지역의 잔치가 될 수 있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