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한 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고, 호텔 예약 화면에 객실의 실제 구조가 표시되지 않으며, 박물관에 자막과 음성해설이 없다면 그 여행은 정말 열린 여행일까.
본 칼럼에서는 접근 가능한 관광(accessible tourism)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것은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나이와 신체 조건, 감각·인지 특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여행할 수 있도록 관광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관광은 권리다]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6%인 13억 명이 중대한 장애를 경험한다고 추정한다.
여기에 고령자와 어린이, 임산부, 일시적으로 다친 사람, 무거운 짐을 든 여행자까지 포함하면 접근성은 일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교통·정보·공공시설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문화생활과 여가, 관광서비스와 관광시설에 참여할 권리도 명시한다.
따라서 접근 가능한 관광은 기업의 친절이나 선택적 사회공헌이 아니다.
관광을 이용할 권리를 실제로 보장하기 위한 공공정책이자 인권의 문제다.
[여행은 객실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관광객이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순간까지 모든 단계가 연결돼 있다.
집에서 공항으로 이동하고, 항공기와 기차를 타고, 숙소에 체크인하고, 관광지와 식당을 방문하며, 정보를 검색하고 결제한다.
이 가운데 한 단계라도 접근할 수 없으면 전체 여행이 중단될 수 있다. 휠체어 사용자가 무장애 객실을 예약했지만 공항 리무진에 탑승할 수 없다면 객실의 접근성은 의미가 없다.
청각장애인이 호텔에 도착했지만 화재 경보와 비상방송을 볼 수 없다면 안전한 숙박이라고 할 수 없다.
유럽연합의 접근 가능한 관광 지침은 호텔·교통·관광명소·여가시설·관광안내소·정보와 예약시스템·마케팅·직원 태도까지 관광 가치사슬 전체가 접근 가능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유엔관광기구 역시 접근성을 개별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목적지와 관광공급망 전체의 전략으로 다룬다.
관광의 접근성은 가장 약한 연결고리에서 결정된다.
[‘무장애’라는 말의 함정]
호텔 예약 화면에 ‘장애인 객실’이라고 표시되어 있다고 해서 실제로 이용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침대 옆 회전공간이 충분한지, 욕실 문이 바깥으로 열리는지, 샤워 의자와 손잡이가 있는지, 휠체어가 식당과 수영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경험은 달라진다.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습니다”라는 문구만으로는 부족하다.
여행자가 필요한 것은 객실의 문 폭과 침대 높이, 욕실의 구조, 경사로의 각도, 관광지까지의 이동거리와 같은 구체적인 정보다.
정보가 부정확하면 여행자는 현장에서 예약을 취소하거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접근성 정보는 시설이 직접 제공하되, 실제 이용자와 전문가가 확인하고 정기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접근성 인증도 서류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실제 동선과 서비스 경험을 평가해야 한다.
[감각의 장벽도 있다]
접근성은 계단과 경사로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각·청각·인지장애가 있는 여행자는 정보와 안내 방식에서 다른 장벽을 경험한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웹페이지와 예약 앱이 스크린리더로 읽혀야 하고, 중요한 이미지에는 대체텍스트가 있어야 한다.
관광지에서는 촉각지도와 음성해설, 점자·큰 글씨 안내가 도움이 된다.
청각장애인에게는 자막과 수어영상, 문자 기반 안내, 시각적 화재·재난경보가 필요하다.
음성으로만 설명하는 가이드투어와 비상방송은 일부 여행자를 배제한다.
자폐 스펙트럼이나 인지장애가 있는 여행자에게는 복잡한 동선과 예측할 수 없는 소음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조용한 시간대와 사전 동선 안내, 그림 기반 표지, 휴식공간은 여행의 안정성을 높인다.
접근성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같은 경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동이 막히면 관광도 멈춘다]
관광지까지 이동하는 교통수단은 접근 가능한 관광의 핵심이다.
저상버스가 있어도 정류장에 턱이 높거나, 운전자가 휠체어 고정장치를 사용하지 못하면 실제 이용은 어렵다.
기차역에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고장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지 않으면 여행자는 플랫폼에 갇힐 수 있다.
항공과 철도, 버스·택시·선박이 서로 다른 규정과 예약절차를 요구하면 여행자는 이동의 각 단계마다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한다.
수하물과 보조기기의 파손, 환승 지원 부족, 승하차 시간 부족은 장애인 여행자에게 반복되는 문제다.
접근성은 교통기관 하나가 해결할 수 없다.
터미널과 정류장, 보도와 횡단보도, 관광시설 입구와 화장실까지 하나의 이동 경로로 설계해야 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도 접근성을 물리적 환경·교통·정보통신·공공서비스에 걸쳐 보장하도록 요구한다.
여행자는 관광명소 앞에서 처음 접근성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집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접근성의 영향을 받는다.
[동반자와 가족도 여행자다]
장애인의 여행은 개인 여행이 아닐 수 있다.
가족과 친구, 활동지원사와 안내견이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일부 관광시설은 동반자를 추가요금의 대상으로만 보거나, 활동지원사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한다.
접근 가능한 관광은 장애인 당사자만을 위한 객실·좌석·입장권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동반자가 함께 머물 수 있는 객실과 교통, 식사와 투어를 설계해야 한다.
안내견과 보조견의 출입을 막는 식당, 보조기기를 보관할 안전한 공간이 없는 항공·숙박시설, 동반자에게만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관광상품은 가족 단위 여행의 선택지를 좁힌다.
관광은 혼자 하는 활동으로만 설계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여행에는 돌봄과 지원의 관계가 함께 들어 있다.
[직원의 태도가 시설을 완성한다]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직원이 장애인 여행자를 무시하거나 과도하게 도와주려 한다면 관광 경험은 불편해진다.
장애인을 어린아이처럼 대하거나, 본인에게 묻지 않고 동반자에게만 말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신체를 만지는 행동은 선의와 관계없이 차별이 될 수 있다.
직원 교육에는 시설 이용법만이 아니라 의사소통과 개인정보 보호, 동의와 자기결정권, 비상상황 지원이 포함돼야 한다.
또한 장애인 당사자와 고령자, 접근성 전문가가 교육과 서비스 평가에 참여해야 한다.
접근성은 장비가 아니라 문화이기도 하다.
장애인 여행자를 ‘특별한 손님’이 아니라 다른 고객과 동등한 손님으로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접근성이 곧 수익성이라는 말]
관광업계는 접근 가능한 관광을 새로운 시장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실제로 접근성을 높이면 성수기와 비수기 구분을 완화하고, 동반자와 가족 단위 여행객을 유치하며, 고객 충성도와 목적지 평판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접근성을 단순한 수익 기회로만 바라보면 문제가 생긴다.
투자수익이 낮아 보이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뒤로 미루거나, 구매력이 높은 관광객만 대상으로 접근성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접근 가능한 관광의 경제적 효과는 중요하다.
그러나 권리는 수익성이 높을 때만 제공되는 서비스가 아니다.
장애인이 적게 방문한다고 해서 접근성을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며, 접근성이 잘 갖춰진 곳은 더 많은 사람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목적지가 될 뿐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바꾸자]
특정 집단을 위한 사후 개조보다 처음부터 다양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계단 옆에 임시 경사로를 덧붙이는 것보다 턱이 없는 입구를 처음부터 만들고, 시각장애인 전용 안내판만 설치하기보다 글씨·색상·음성·촉각 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다.
유엔은 관광시설과 서비스가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이 특별한 개조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기존 장벽은 단계적으로 제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유엔관광기구와 국제표준 ISO 21902:2021도 정책·인프라·상품·서비스와 관광공급망 전반에 접근성 기준을 적용하도록 제안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누구도 특별대우 받지 않고 여행할 수 있게 한다.
휠체어 이용자뿐 아니라 유모차를 미는 부모, 무거운 가방을 든 여행자, 잠시 다친 사람도 그 혜택을 누린다.
[당사자가 설계에 참여해야 한다]
접근성을 전문가나 행정기관만 설계하면 현장의 중요한 문제가 빠질 수 있다.
장애인 당사자는 시설과 예약 시스템, 교통과 안내에서 어떤 장벽을 겪는지 가장 잘 알고 있다.
관광정책 수립과 신규시설 설계, 시범운영과 평가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와 관련 단체가 참여해야 한다.
자문회의에 한 번 초대하는 형식적 참여보다, 예산과 기준·평가 결과에 실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관광지는 접근성을 보여 주는 홍보사진보다 실제 여행경로를 공개해야 한다.
공항에서 숙소, 숙소에서 관광지, 관광지에서 식당까지의 모든 구간을 당사자가 직접 점검하고 문제를 수정해야 한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다”가 아니라 “장애인이 직접 이용해 보고 계속 개선하고 있다”가 신뢰할 수 있는 표현이다.
[여행 정보도 접근 가능해야 한다]
예약 단계에서 접근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여행은 출발 전부터 불안해진다.
관광 웹사이트와 앱은 키보드만으로도 탐색할 수 있어야 하고, 이미지와 지도에는 대체정보가 있어야 하며, 색상만으로 정보를 구분해서는 안 된다.
접근성 정보를 제공할 때는 모호한 표현을 피해야 한다.
“편리한 객실” 대신 문 폭과 욕실 구조를, “휠체어 접근 가능” 대신 주차장부터 객실까지 계단이 있는지와 경사로·엘리베이터·화장실 이용 가능 여부를 표시해야 한다.
예약 시스템이 접근 가능하지 않으면 여행자는 전화로 반복해서 확인해야 하고, 정보가 틀렸을 때 그 위험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관광산업은 “문의하면 알려 드립니다”가 아니라, 누구나 스스로 충분한 정보를 얻고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접근성은 안전과 연결된다]
재난과 사고가 발생하면 접근성의 차이는 생존 가능성의 차이가 된다.
화재경보가 소리로만 제공되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피의자와 지원인력이 없다면 장애인 여행자는 더 큰 위험에 처한다.
관광시설의 대피훈련에는 휠체어 이용자와 시각·청각장애인, 인지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이용자의 상황이 반영돼야 한다.
비상대피 정보는 큰 글씨·그림·음성·진동 등 여러 방식으로 제공하고, 직원이 각 지원방법을 실제로 연습해야 한다.
본 칼럼에서 살펴본 것처럼 재난회복력은 관광객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접근성 없는 재난대응은 누구에게나 안전한 대응이 될 수 없다.
[본 칼럼의 질문]
접근 가능한 관광은 장애인을 위한 별도 관광상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기존 관광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마치며 이렇게 적고 싶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계단 앞에서 끝나고, 누군가에게는 읽을 수 없는 안내문 앞에서 멈추며, 누군가에게는 들을 수 없는 비상방송 때문에 위험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접근성을 “추가 옵션”처럼 다룬다.
예약할 때 요청해야만 제공되는 특별서비스, 비용이 더 들면 선택할 수 있는 편의, 수요가 많아지면 만들겠다는 시설로 남겨 둔다.
여행은 모든 사람의 권리라 말하려면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 이 목적지는 집에서 관광지까지 하나의 접근 가능한 경로를 제공하는가.
- 예약 화면은 누구나 읽고 사용할 수 있는가.
- 시설 정보는 실제 구조를 구체적으로 공개하는가.
- 직원은 장애인 당사자와 직접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비상상황에서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가.
- 접근성 정책을 장애인 당사자가 함께 설계하고 평가하는가.
좋은 관광지는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곳”을 몇 군데 지정하는 곳이 아니다.
어디를 가든, 누구와 가든, 도움을 구걸하지 않고 여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곳이다.
그리고 다음 여행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여행은 나에게 편리한가”를 넘어,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함께 여행할 수 있는가.”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