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과 산불, 홍수와 태풍, 지진과 감염병은 더 이상 관광계획표 밖의 예외가 아니다.
본 칼럼에서는 재난 앞에서 관광객과 주민, 관광사업자가 어떻게 함께 살아남을 것인지 묻고자 한다.
[휴양지가 대피소로 바뀌는 순간]
관광지는 휴식과 즐거움을 약속한다.
그러나 산불 연기가 하늘을 덮고 폭우로 도로가 끊기는 순간, 호텔은 임시 대피소가 되고 관광버스는 구조차량이 되며 가이드는 안전요원이 된다.
2023년 그리스 로도스섬에서는 산불로 약 1만 9,000명이 대피했다.
일부 관광객은 육로가 막혀 해변에서 선박으로 구조됐으며, 이는 당시 그리스 최대 규모의 산불 대피 작전으로 기록됐다.
관광객이 많이 몰린 지역에서는 재난 대응도 복잡해진다.
주민 수보다 훨씬 많은 방문객이 좁은 지역에 머물 수 있고, 이들은 지리와 언어, 재난 유형, 대피경로를 잘 모른다.
휴대전화 통신과 전력이 끊기면 관광객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재난은 관광지의 문제가 아니라 관광의 구조를 시험하는 순간이다.
[재난은 자연스럽지 않다]
우리는 흔히 산불과 홍수, 지진을 ‘자연재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같은 규모의 위험이 발생해도 피해는 어디에, 어떤 시설을 지었고 누가 정보와 이동수단을 가졌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유엔의 센다이 재난위험경감 프레임워크는 재난위험을 줄이기 위해 위험 자체뿐 아니라 노출과 취약성, 토지이용과 제도, 사회적 불평등을 함께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프레임워크는 특히 관광 의존도가 높은 지역에서 재난위험 관리를 관광산업 전반에 통합하도록 요구한다.
산불 위험이 큰 숲 가까이에 대규모 리조트를 짓고도 대피로를 하나만 확보했다면 피해를 단순히 자연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침수 가능성이 높은 해변과 하천변에 숙박시설을 집중시키고, 주민과 관광객의 수용 능력을 넘어 개발했다면 그것은 자연현상과 잘못된 계획이 결합해 만든 재난이다.
[관광객이 늘면 구조역량도 늘어나는가]
관광개발 계획에는 객실 수와 방문객 수, 관광수입과 일자리가 자세히 제시된다.
그러나 관광객이 갑자기 대피해야 할 때 필요한 버스와 선박, 대피소와 의료인력, 비상식량·식수의 규모는 충분히 계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수기에는 주민등록인구를 기준으로 설계된 소방·응급의료·상하수도·도로 체계에 몇 배의 인구가 더해질 수 있다.
그런데 관광으로 생긴 세입이 재난 대응역량 강화에 투자되지 않으면, 지역은 방문객은 많이 받으면서도 위기 때 그들을 지킬 능력은 부족한 상태에 놓인다.
2024년 센다이 관광회복력 심포지엄에서도 전문가들은 재난 발생 후 임시로 대응하는 방식보다 평상시의 위험분석과 기관 간 협력, 반복적인 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관광청의 관광회복력 지침도 지역의 지리·산업 특성을 반영한 위험평가, 정부기관 간 정보 공유, 역할 분담, 비축물자 관리와 정기 훈련을 핵심 요소로 제시한다.
따라서 관광객 수용력은 침대와 주차장 수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긴급상황에서 모든 사람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해야 한다.
[경보는 울렸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재난 경보가 정확해도 관광객이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관광객은 현지 언어를 모르거나 재난 경보음과 행동요령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호텔 객실에 비상구 안내도가 붙어 있어도 글씨가 작거나 현지어로만 적혀 있다면 실질적인 안내가 아니다.
산불 대피 방향과 지진 발생 시 행동, 쓰나미 대피지점, 응급전화 번호가 체크인 과정에서 설명되지 않는다면 여행자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받지 못한 셈이다.
관광회복력 지침은 재난·기상·교통 정보를 여러 기관이 통합해 관리하고, 평상시부터 관광객에게 위험을 알려야 한다고 권고한다.
시각·청각 장애인과 고령자, 어린이를 동반한 여행자까지 고려해 문자·음성·그림·진동·수어 등 여러 방식으로 전달하는 포용적 경보체계도 필요하다.
정보는 관광 이미지를 해치는 불편한 경고가 아니다.
위험을 숨기지 않고 알려 주는 것이 안전한 목적지가 갖춰야 할 신뢰의 조건이다.
[주민보다 관광객이 먼저인가]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와 언론의 관심은 관광객 구조와 귀국에 집중되기 쉽다.
외국인 관광객의 안전은 물론 중요하지만, 주민과 관광노동자는 관광객을 구조하고 돌본 뒤에도 피해 지역에 남아 삶을 복구해야 한다.
호텔 직원은 자신의 가족과 집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투숙객을 안내해야 할 수 있다.
가이드와 버스 기사, 청소·조리 노동자는 대피 후에도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소규모 상인은 몇 달 동안 수입이 끊기지만, 대기업은 사업장을 닫고 다른 지역으로 운영을 옮길 수도 있다.
재난계획에는 관광객뿐 아니라 노동자의 가족 연락과 대피, 유급휴가와 임금, 숙소와 의료지원, 고용 유지가 포함돼야 한다.
지역주민의 식수와 연료, 병상과 대피공간이 부족한데 리조트 투숙객에게만 자원을 우선 배정한다면 관광은 공동체의 회복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센다이 프레임워크는 재난위험을 줄이는 과정에서 지역사회와 취약집단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광 위기관리 역시 주민을 구조를 제공하는 배경 인력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권리의 주체로 대해야 한다.
[장애인에게 같은 대피는 없다]
“모두 대피하십시오”라는 지시는 모두에게 같은 의미가 아니다.
휠체어 이용자는 계단을 내려갈 수 없고, 시각장애인은 연기 속에서 대피표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청각장애인은 사이렌과 객실 방송을 듣지 못하며, 고령자와 어린이·임신부는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하기 어렵다.
관광 회복력을 논의한 국제 지침들은 장애인과 고령자 등 취약한 방문객을 고려한 비상절차와 특별지원, 관광사업 종사자 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재난위험경감 지침도 경보와 대피, 복구 과정에 여성과 취약집단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호텔과 관광시설은 예약 단계에서 지원 필요 여부를 안전하게 확인하고, 장애인 객실과 피난용 승강기·대피의자, 시각·음성 경보장치를 준비해야 한다.
직원이 누구를 어떻게 도울지 정하지 않은 채 “현장에서 알아서 돕겠다”는 계획은 계획이 아니다.
[관광기업의 책임은 환불에서 끝나지 않는다]
재난이 발생하면 여행사와 숙박업체의 대응은 취소·환불 문제로 축소되기 쉽다.
그러나 기업의 책임은 예약대금 처리보다 넓다.
여행사는 출발 전에 계절별 위험과 보험 조건, 비상연락망을 안내해야 한다.
호텔은 비상전력과 식수·의약품을 확보하고, 근무자 교대와 투숙객 명단 관리, 외국인·장애인 대피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플랫폼은 검증되지 않은 소문 대신 정부의 공식 경보와 도로·공항 상황을 신속하게 전달해야 한다.
관광사업자는 최소한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 화재·홍수·지진·폭염·감염병 등 복합위험별 대응계획
- 직원과 협력업체의 책임 및 지휘체계
- 통신 두절에 대비한 종이 명단과 오프라인 지도
- 비상 식수·식량·조명·의약품·휴대전원
- 여러 언어와 접근 가능한 형식의 대피 안내
- 관광객뿐 아니라 직원과 가족을 위한 보호계획
- 대피훈련과 사후 평가
- 취소·환불·대체교통에 관한 명확한 기준
일본이 정리한 센다이 선언 관련 지침도 공공·민간 협력, 회복력 있는 기반시설, 반복적인 교육과 훈련, 비축물자 관리와 지역사회 참여를 핵심 과제로 제시한다.
서류 속 매뉴얼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반복해 연습하는 일이다.
[다시 관광객을 부르는 것이 회복인가]
재난 이후 관광당국은 흔히 “우리는 안전하다”며 관광객의 귀환을 서두른다.
관광수입이 끊기면 소상공인과 노동자의 생계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시장 회복은 필요하다.
그러나 방문객 수가 재난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지역이 회복된 것은 아니다.
주민이 임시주택에 살고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는데 호텔과 공항만 정상화됐다면, 그것은 관광산업의 회복일 뿐 공동체의 회복은 아니다.
관광회복력은 충격을 견디고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지역이 위기의 원인을 학습하고, 더 안전하고 공정한 구조로 적응·전환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유엔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원칙도 복구 과정에서 이전의 취약성을 그대로 재현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재난으로 무너진 해안에 같은 규모의 리조트를 다시 짓고, 같은 계절과 시장에 의존한다면 그것은 복구가 아니라 위험의 재건이다.
[회복이라는 이름의 배제]
재난 후 재건은 새로운 투자와 개발의 기회로 포장되기도 한다.
토지 가격이 떨어진 피해 지역을 외부 자본이 사들이고, 주민의 집과 소규모 상점이 고급호텔과 관광시설로 바뀌면 도시는 깨끗해질지 몰라도 원래 공동체는 돌아오지 못한다.
일본 이시노마키의 재난관광과 지역재생을 장기간 분석한 연구는 추모시설과 관광사업이 공동의 기억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지만, 주민 일상과 공간적으로 분리되거나 일부 노동자와 이주민이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연구는 지속가능한 회복을 위해 외부 방문객 중심의 시설보다 주민의 영향력과 다양한 집단의 참여를 우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재건 과정에서는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
- 주민은 다시 돌아와 살 수 있는가.
- 복구예산이 주거와 학교·병원보다 관광시설에 먼저 쓰이지 않는가.
- 재난 이전부터 존재한 저임금과 주거난이 개선되는가.
- 피해자의 기억과 사생활이 관광상품으로 소비되지 않는가.
- 복구사업과 관광수입의 의사결정에 주민이 참여하는가.
회복은 건물을 다시 세우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다시 삶을 꾸릴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관광을 분산해야 하는 이유]
관광지가 특정 계절과 한두 개의 해외시장, 몇 개의 유명 명소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재난 충격은 더 커진다.
공항이 닫히거나 산불로 성수기가 중단되는 순간 지역 전체의 소득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회복력 정책은 국내·근거리 시장과 비수기 상품을 키우고, 지역경제를 관광 이외 산업과 연결해 위험을 분산할 것을 권고한다.
방문객 수보다 장기적인 가치와 환경·사회적 영향을 중심으로 관광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분산은 관광객을 다른 동네로 보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소득원과 공급망, 에너지와 물, 교통수단을 다변화하고, 관광이 멈춰도 지역의 기본생활이 유지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여행자도 재난의 당사자다]
여행자는 안전을 서비스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위험지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면 스스로 준비하고 지역의 대응체계에 협력할 책임도 있다.
출발 전에는 기상과 재난 경보, 여행경보와 보험 보장범위를 확인해야 한다.
현지에서는 호텔의 비상구와 대피장소를 확인하고, 산불·홍수·폭염 경고가 내려졌을 때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려고 위험지역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재난 직후에는 구조활동을 방해하는 방문을 삼가야 한다.
“가서 돈을 써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식수와 연료·숙소가 부족하고 도로가 복구되지 않았다면 방문을 미루는 것이 지역을 돕는 선택일 수 있다.
반대로 지방정부와 주민이 안전을 확인하고 방문을 요청한다면, 지역 소유 숙소와 식당·가이드를 이용해 회복을 지원할 수 있다.
방문 여부는 여행자의 선의가 아니라 현지의 요청과 수용 능력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본 칼럼의 질문]
2024년 센다이 선언은 관광회복력을 두 축으로 정리한다. 하나는 재난의 충격을 예방하고 최소화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충격을 흡수하고 적응과 전환을 통해 회복하는 것이다.
본 칼럼을 마치며 이렇게 적고 싶다.
안전한 관광지는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아니다.
위험을 숨기지 않고 알리며, 관광객과 주민·노동자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고, 위기 이후 이전보다 더 공정하고 안전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곳이다.
다음 여행을 예약하면서 우리는 수영장과 전망, 조식과 후기를 확인한다.
이제 그 목록에 몇 가지를 더 넣어야 한다.
- 이곳에는 어떤 위험이 있는가.
- 경보가 울리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 호텔과 여행사는 실제 대피훈련을 했는가.
- 관광객을 지키는 노동자와 주민도 함께 보호받는가.
- 재난 이후 관광수입은 지역의 삶을 복구하는 데 쓰이는가.
그리고 관광정책을 설계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이렇게 물어야 한다.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는 관광객을 몇 명 더 받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들 모두를 주민과 함께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가.”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