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칼럼 60] 여행자의 수영장, 주민의 빈 수도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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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인사이트

[관광칼럼 60] 여행자의 수영장, 주민의 빈 수도꼭지

관리자 2026-09-28 조회수 42

 

맑은 수영장과 푸른 잔디, 매일 세탁되는 침구와 긴 샤워. 휴양지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풍요로운 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본 기고에서는 여행의 가장 조용하지만 절박한 자원, 물과 관광의 불평등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관광은 물 위에 세워진다]

 

관광산업은 물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객실의 샤워와 화장실, 세탁실과 주방은 물론 수영장·스파·골프장·정원·워터파크 운영에도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

유엔관광기구는 물 부족 지역에서 관광이 지속가능한 개발의 제약 요인이 되고, 주민과 관광시설 사이의 물 배분·가격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새로운 취수원을 개발하거나 외부에서 물을 운송하고 해수담수화 시설을 설치하려면 많은 비용과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공급 확대보다 소비 감축과 재이용을 우선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관광의 직접적인 물 사용량은 세계 전체 사용량의 1% 미만으로 추정된다. 

이 숫자만 보면 관광의 책임이 작아 보이지만, 문제는 언제, 어디에서 물을 쓰느냐에 있다.

관광 수요는 비가 적고 물이 가장 부족한 여름철에 해안과 섬으로 집중된다. 

이 시기는 주민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수요도 함께 늘기 때문에, 관광의 비중이 연간 통계상 작더라도 특정 지역과 계절에는 심각한 압박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관광객은 주민보다 많이 쓴다]

 

여행지에서는 평소보다 물을 아껴 쓰기 어렵다.

숙박요금에 수도요금이 포함돼 있다는 생각으로 샤워를 오래 하고, 호텔은 매일 수건과 침구를 세탁하며, 뜨거운 날씨에는 수영장과 정원에 더 많은 물을 사용한다.

 

몰타에서 진행된 조사에서는 관광객 1인당 하루 평균 물 사용량이 약 296리터로 나타났고, 관광객이 현지 주민보다 개인용 물을 거의 두 배 많이 사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중해 관광지 연구에서도 관광객 1명이 하루 300리터 안팎, 고급 관광시설에서는 훨씬 많은 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제시됐다.

 

호텔별 편차는 더욱 크다. 지속가능환대연합의 자료에 따르면, 객실 한 곳의 물 사용량은 입지와 시설 수준에 따라 하루 250리터에서 5,000리터 이상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리스 사모스섬의 중소 숙박시설 8곳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숙박객 1박당 물 사용량은 320~860리터로 나타났으며, 절수설비를 설치한 곳의 소비량이 가장 낮았다.

 

물 소비량은 숙박시설의 등급과 부대시설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넓은 정원과 여러 개의 수영장, 스파와 골프장, 매일 이뤄지는 세탁과 청소는 ‘고급 서비스’로 판매되지만, 물 부족 지역에서는 주민의 생활용수와 같은 수원에 의존할 수 있다.

 

[연간 통계가 숨기는 갈등]

 

관광의 물 소비를 국가 전체 비율로만 보면 문제를 과소평가하기 쉽다.

지중해 주요 관광지에서 호텔 숙박과 관련된 물 사용은 전체 수요의 약 2~4.5%로 추산되지만, 섬과 해안 관광지에서는 성수기 수요가 좁은 지역과 짧은 기간에 집중된다.

 

크레타섬의 관광산업이 직접 사용하는 물은 전체 소비량의 약 3.06%로 추정된다. 

그러나 관광객 수가 매년 600만 명을 넘고 기후변화로 이용 가능한 물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 연구자는 관리가 개선되지 않으면 물 부족과 이용자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로도스섬에서는 관광객의 직접 소비가 전체 강수량이나 수자원에 비하면 작아 보이지만, 전체 공급량을 기준으로 하면 약 13%를 차지한다는 분석이 있다. 

스페인 베니도름에서는 관광시설이 도시 물 소비의 약 30%, 이탈리아 리미니에서는 호텔이 약 15%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처럼 같은 관광이라도 지역의 강수량과 지하수, 주민 수, 숙박시설 형태에 따라 부담은 전혀 달라진다. 

세계 평균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목적지의 물그릇이 얼마나 크며, 관광이 가장 목마른 시기에 얼마나 가져가느냐이다.

 

[보이지 않는 물도 있다]

 

호텔 욕실과 수영장에서 쓰는 물만 계산해서는 관광의 전체 발자국을 알기 어렵다. 

관광객이 먹는 고기와 채소, 마시는 음료, 매일 교체하는 침구와 수건을 생산하는 과정에도 많은 물이 들어간다.

 

크레타 연구는 관광의 간접적인 물 수요가 직접 수요보다 훨씬 클 수 있으며, 그중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식품 생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지적한다. 

지속가능환대연합도 호텔이 직접 사용하는 물뿐 아니라 식음료·린넨 등 공급망의 물 발자국을 파악하고, 물 사용량이 많은 공급업체와 공동으로 감축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관광의 물 문제는 따라서 객실에 “수건을 다시 사용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을 붙이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뷔페의 음식물 폐기, 육류 중심 식단, 세탁·조경 외주, 식재료 생산까지 포함해 관광 가치사슬 전체를 살펴야 한다.

 

[담수화는 완전한 해법인가]

 

물이 부족한 관광지는 종종 해수담수화로 공급을 늘린다. 몰타·발레아레스·카나리아제도 등 여러 섬 관광지는 이미 담수화 시설을 통해 도시와 관광산업의 물 수요를 충당해 왔다.

 

담수화는 안정적인 공급원이 될 수 있지만,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시설 건설·운영비가 높으며,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염도 농축수가 해양생태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유엔관광기구도 담수화와 물 수입 같은 새로운 공급원은 비싸고 확보하기 어려우므로, 재이용과 절수를 통해 수요부터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급만 계속 늘리면 관광시설은 물을 아껴야 할 유인을 잃을 수 있다. 

그리고 담수화 비용이 수도요금과 세금에 반영될 경우, 관광산업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비용을 주민이 함께 부담하는 문제가 생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물을 더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물을 만들고 그 비용과 환경 부담을 누가 감당하는가이다.

 

[절수는 불편이 아니라 경영이다]

 

호텔이 물 사용량을 줄이는 방법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저유량 샤워기와 수도꼭지, 절수형 변기, 누수 감지, 세탁물 재사용, 빗물 수집, 회색수 재활용, 스마트 계량기, 건조지역에 맞는 조경 등이 대표적이다.

 

사모스섬 연구는 저비용 절수설비만으로도 고객의 편의를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물 사용량과 운영비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베니도름과 리미니에서 관광객 850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조경이나 화장실에 음용수가 아닌 재생수를 사용하는 방안과 절수 참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에 대한 수용도가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기술 설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속가능환대연합은 호텔의 물 관리에 다음과 같은 단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 시설별·공정별 물 사용량과 취수원을 측정한다.

- 지역의 물 부족 정도와 주민 수요를 반영해 감축목표를 정한다.

- 누수·세탁·주방·수영장·조경의 효율을 개선한다.

- 오수를 적절히 처리하고 회색수와 빗물을 재이용한다.

- 식품·음료·침구 등 공급망의 물 발자국을 관리한다.

- 사용량과 감축 결과를 공개하고 지역 물 관리기관·주민과 협의한다.

 

관광지 차원에서도 관광객 1인당 하루 사용량과 관광 부문의 총사용량, 재이용률, 수입·담수화 물의 비중 등을 공개해야 한다. 

유엔관광기구는 이러한 지표를 물 부족 관광지의 물리적 수용력을 판단하고 공급 위기를 조기에 발견하는 도구로 제시한다.

 

[주민의 물이 먼저다]

 

관광산업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단순하다. 

주민의 안전한 식수와 위생에 대한 권리가 수영장·골프장·조경용수보다 먼저여야 한다.

 

물이 부족할 때 주민에게만 절수를 요구하면서 호텔 수영장과 잔디밭을 그대로 운영한다면, 그것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다. 

관광이 지역의 공동자원을 사용해 이익을 얻는다면, 물 절약뿐 아니라 상하수도와 오수처리 시설 개선에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유엔관광기구는 관광 투자가 목적지와 주변 지역의 물 접근성·위생·하수처리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속가능환대연합 역시 호텔이 직원과 주민의 물·위생 접근성을 물 관리 전략에 포함하고, 지역 기관과 자료를 공유하며 공동의 물 문제 해결에 참여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잘 관리된 관광은 물을 빼앗는 산업에 머물지 않고, 낡은 관망과 정수·하수처리 시설을 개선하는 투자자가 될 수도 있다. 

다만 그 시설이 리조트 전용이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도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본 칼럼의 질문]

 

우리는 호텔에 들어갈 때 침구의 부드러움과 수영장의 크기, 바다 전망은 확인한다. 

그러나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사용한 뒤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거의 묻지 않는다.

 

이제 여행자와 관광산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 이 숙소는 객실과 투숙객당 물 사용량을 측정하고 공개하는가.

- 수영장과 정원에는 식수 대신 재생수·빗물을 사용하는가.

- 가뭄이 발생하면 주민과 관광시설에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가.

- 관광으로 얻은 수입이 지역 상하수도와 수질 개선에 환원되는가.

- 물을 절약한다는 이유로 직원의 위생과 노동환경을 희생하고 있지는 않은가.

 

본 기고를 마치며 이렇게 적고 싶다.

 

여행지의 물은 호텔이 만들어 낸 상품이 아니다.

그곳 주민과 농민, 생태계와 미래 세대가 함께 의지하는 공동자원이다.

 

수영장 하나를 채우는 일이 누군가의 수도꼭지를 마르게 하고, 푸른 잔디를 유지하는 일이 밭과 습지를 메마르게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좋은 관광이라 부르기 어렵다.

 

다음 여행에서 맑게 채워진 수영장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한 번쯤 물어야 한다.

 

“이 물을 누리는 동안에도, 이곳 주민의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흐르고 있는가.”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