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칼럼 59] 떠다니는 도시, 항구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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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인사이트

[관광칼럼 59] 떠다니는 도시, 항구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관리자 2026-09-26 조회수 61


새벽 항구로 거대한 크루즈선이 들어온다. 

수천 명의 승객이 한꺼번에 내려 골목과 광장, 시장을 채우고 몇 시간 뒤 배로 돌아간다. 항구도시는 잠시 활기를 띠지만, 배가 떠난 자리에는 매연과 혼잡, 쓰레기, 그리고 “도대체 지역에 무엇이 남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본 칼럼에서는 바다 위의 리조트이자 거대한 이동수단인 크루즈 관광의 두 얼굴을 들여다보고 싶다.

 

크루즈는 항구도시에 기회인가, 아니면 비용을 육지에 떠넘기는 ‘떠다니는 도시’인가.

 

[바다 위에 세운 리조트]

 

오늘날의 대형 크루즈선은 단순한 여객선이 아니다. 

객실과 식당은 물론 수영장·공연장·쇼핑몰·카지노·워터파크까지 갖춰, 배 자체가 하나의 목적지가 되었다. 

관련 연구는 이러한 구조를 ‘해양 리조트’로 설명하며, 선사가 승객의 선내 체류시간과 소비를 늘릴수록 기항지에서 머무는 시간과 지출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크루즈 관광은 분명 항만 사용료와 교통·가이드·관광시설·소매업 수입을 창출하고, 기항 전후 숙박과 물류·선박 서비스 부문에도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항공 접근성이 떨어지는 섬이나 항구도시에는 짧은 시간 안에 대규모 방문객을 연결하는 중요한 관광 경로가 된다.

 

그러나 핵심은 관광객 수가 아니라 지역에 남는 가치의 크기와 분배 방식이다. 

크루즈 승객은 대부분 배에서 숙박하고 식사하며, 선사가 운영하거나 계약한 투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관광수입의 상당 부분이 지역 소상공인보다 선사와 외부 사업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왔다고 해서 지역경제가 그만큼 부유해진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몇 시간의 활기와 하루의 혼잡]

 

크루즈 관광의 특징은 수천 명이 정해진 시간에 한꺼번에 내리고, 비슷한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는 데 있다. 

여러 척이 동시에 입항하면 역사 지구와 시장·광장·전망대에는 짧은 시간 동안 도시 인구에 맞먹는 방문객이 몰릴 수 있다.

 

이런 당일 방문객은 숙박객보다 주거비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혼잡과 기반시설 부담에 비해 지역경제 기여가 제한적일 수 있다. 

베네치아와 두브로브니크처럼 역사·문화유산이 좁은 공간에 밀집된 도시에서는 크루즈 승객의 집중이 보행 혼잡과 소음, 쓰레기, 주민 이동 불편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그 결과 지역 상권도 달라진다. 주민이 이용하던 식료품점과 생활서비스가 사라지고, 짧은 시간 안에 관광객을 상대하는 기념품점·환전소·패스트푸드점이 늘어날 수 있다. 

항구도시는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보다 정해진 시간에 소비하고 떠나는 ‘관광 동선’으로 재편될 위험을 안게 된다.

 

[바다에서 사라지지 않는 오염]

 

크루즈선은 이동수단인 동시에 수천 명이 생활하는 숙박·식음·오락 시설이다. 

따라서 운항 과정에서 온실가스와 질소산화물·황산화물·미세먼지를 배출하며, 오수와 생활하수·음식물·고형폐기물도 지속해서 발생시킨다.

 

환경단체 Transport & Environment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 해역의 크루즈선 CO₂ 배출은 2019년부터 2022년 사이 17% 증가해 810만 톤에 이르렀고, 같은 기간 항만 주변의 황산화물·질소산화물·초미세먼지 배출도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수치는 팬데믹의 충격이 있었는데도 배출이 다시 빠르게 증가했음을 보여 준다.

 

유럽연합의 선박 배출 모니터링 자료에서도 여객선의 항만 정박 중 배출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크루즈선은 접안 중에도 객실·주방·냉난방·조명·오락시설을 계속 가동해야 하므로, 육상전원에 연결하지 않으면 보조엔진을 돌려 전력을 생산한다. 

항구가 단순한 승객 통로가 아니라 주민이 오염에 직접 노출되는 생활공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규정이 있다고 충분한가]

 

국제해사기구의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은 선박의 쓰레기·하수·대기오염물질 배출을 규제한다. 

2020년부터 지정된 배출규제해역 밖에서도 선박연료의 황 함량 상한은 0.5%로 낮아졌으며, 승인된 처리설비 없이 하수를 버리는 행위에도 거리와 처리 방식에 따른 제한이 적용된다.

 

MARPOL 부속서 IV에 따르면 승인된 처리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분쇄·소독 하수는 육지에서 3해리 이상, 처리되지 않은 하수는 12해리 이상 떨어진 곳에서만 일정 조건 아래 배출할 수 있다. 

크루즈 업계도 오수 처리설비와 절수·물 재활용 시스템, 폐기물 관리, 평형수 처리 등 자체 환경정책을 운용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나 합법적인 배출이 곧 생태적으로 무해하다는 뜻은 아니다. 

국제·국가·지역별 규정이 서로 다르고, 공해상의 감시와 집행에는 한계가 있으며, 회색수와 처리수도 운항 해역에 누적 부담을 줄 수 있다. 

크루즈 문제는 규정 준수 여부를 넘어, 바다가 감당해야 할 오염의 총량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커지는 배와 커지는 발자국]

 

크루즈 업계는 선박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액화천연가스와 대체연료, 배기가스 정화장치, 육상전원 연결을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효율 개선과 폐기물 처리 기술은 기존 선박보다 발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 척의 배가 더 커지고, 더 많은 승객과 객실·수영장·오락시설을 실으면 전체 에너지 사용량도 증가할 수 있다. 

Transport & Environment는 대형화가 빠르게 이어지면서 효율 개선에도 불구하고 크루즈 부문의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 총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LNG는 황산화물과 일부 대기오염물질을 줄이는 장점이 있지만, 생산·공급·연소 과정에서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이 누출되는 문제가 있다. 

유럽 해역 크루즈선의 메탄 배출이 2019~2022년 크게 증가했다는 분석은, 단순한 연료 교체를 곧바로 ‘친환경 크루즈’로 부르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크루즈를 거부하는 도시들]

 

크루즈 관광의 비용이 커지자 일부 항구도시는 입항 규모와 항로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의 대형 크루즈선 주요 수로 진입 제한은 역사 지구로 직접 유입되는 크루즈 방문객을 줄이는 데 일정한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크루즈선만 막는다고 오버투어리즘 전체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베네치아에서는 크루즈 방문객 감소분보다 다른 관광객의 증가가 더 커 전체 혼잡이 계속됐다는 분석도 있다. 

크루즈 규제는 목적지 전체의 숙박·교통·주거·당일관광 정책과 결합해야 한다는 의미다.

 

도시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은 다양하다.

 

- 동시에 입항하는 선박과 하루 승객 수에 상한을 둔다.

- 성수기와 혼잡 시간대의 정박료·관광세를 높인다.

- 육상전원 사용과 저배출 연료 기준을 의무화한다.

- 항만환경 부담금의 사용처를 주민 보건·대기질 개선·해양생태 복원에 연결한다.

- 선사 중심의 단체투어 대신 지역 사업자가 소유·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한다.

- 입항 일정을 분산하고, 취약한 역사 지구와 자연지역의 수용력을 반영한다.

 

이러한 조치는 크루즈를 무조건 금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항구가 선사 간 경쟁에 밀려 더 많은 배를 받아야만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크루즈 관광은 목적지의 관광 포트폴리오 중 하나로 관리해야 하며, 도시 전체가 한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도록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는 연구의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승객도 질문할 수 있다]

 

여행자는 크루즈 회사의 환경정책과 기항지 기여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선박이 정박할 때 육상전원을 사용하는지, 하수와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노동과 공급망 기준을 공개하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기항지에서는 선사가 묶어 판매하는 상품만 고르기보다 지역 가이드·상점·식당을 직접 이용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유명 명소만 훑는 대신 주민 생활권을 침해하지 않는 소규모 투어를 선택하고, 관광세와 환경부담금이 포함된 상품이라면 그 비용을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값싼 가격으로 여러 도시를 한 번에 본다”는 편리함이 어떻게 가능해졌는지를 물어야 한다. 

저렴한 객실료 뒤의 연료와 노동, 폐기물, 항만시설 비용 중 일부가 바다와 항구 주민에게 전가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일이다.

 

[본 칼럼이 던지는 질문]

 

크루즈선이 항구로 들어올 때 우리는 흔히 승객 수와 소비액부터 계산한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장부도 함께 펼쳐야 한다.

 

- 관광수입 중 실제 지역에 남는 몫은 얼마인가.

- 혼잡과 대기오염, 폐기물 처리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 선사가 떠난 뒤에도 주민의 삶과 지역 상권은 지속될 수 있는가.

- 관광객 증가를 위해 항구도시가 포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본 칼럼을 마치며 이렇게 적고 싶다.

 

크루즈선은 떠다니는 도시다.

그러나 배 위의 즐거움을 유지하는 연료와 물, 노동과 폐기물은 결코 바다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크루즈 관광은 더 크고 화려한 배를 만드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배가 떠난 뒤 항구에 남은 공기와 바다, 골목과 주민의 삶이 이전보다 나빠지지 않도록 책임을 나누는 데서 시작된다.

 

다음에 항구로 들어오는 거대한 배를 바라볼 때,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저 배가 싣고 온 관광객만큼, 이 도시에 책임도 함께 내려놓고 있는가.”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