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칼럼 56] 계단 끝에서 멈추는 여행, 이제는 끝내야 한다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Contact Us
연구, 교육, 컨설팅을 통해 관광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 전략을 제안합니다.

관광 인사이트

[관광칼럼 56] 계단 끝에서 멈추는 여행, 이제는 끝내야 한다

관리자 2026-09-21 조회수 56


우리는 자주 말해 왔다. 관광은 모두의 권리라고.

하지만 공항의 계단, 역의 엘리베이터 고장, 턱 높은 횡단보도와 비좁은 화장실 문 앞에서, 그 “모두”에는 언제나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유엔은 전 세계 인구 중 장애인이 10억 명이 넘고, 이들의 가족과 보호자까지 합치면 20억 명 이상, 전 세계 인구의 거의 3분의 1이 장애 이슈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추산한다. 

동시에 고령 인구는 빠르게 늘어, 2025년이면 65세 이상 여행자가 국제여행의 8분의 1, 약 1억 8,000만 건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럼에도 이 거대한 집단은 여전히 “관광 시장 바깥”에 놓여 있다. 본 칼럼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해 보고 싶다.

 

[“접근 가능한 관광”은 복지 정책이 아니라 권리와 시장이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는 ‘모두를 위한 접근 가능한 관광(Accessible Tourism for All)’을 이렇게 정의한다.

“장애가 있든 없든, 나이와 일시적·영구적 제한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독립성과 존엄을 가지고 관광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목적지·상품·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노력”. 여기에는 휠체어 사용자뿐 아니라, 시각·청각·인지·정신장애, 고령자, 유모차를 미는 보호자, 부상·임신·질병 등으로 일시적 이동 제한이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포함된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은 제9조 ‘접근성’에서, 장애인이 물리적 환경·교통·정보·의사소통·공공시설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장애물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제30조는 문화생활·여가·스포츠·관광에 참여할 권리를 분명히 하며, 국가가 관광 혜택을 장애인에게도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한다. 

유엔 경제사회국은 그래서 “접근 가능한 관광은 인권 차원에서의 필수 과제이면서, 동시에 예외적으로 큰 비즈니스 기회”라고 정리한다.

 

하지만 수많은 보고서가 말해 주듯, 이 잠재 시장은 여전히 “충분히 서비스되지 못한(under-served) 시장”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갈 수 없고, 몰라서 못 가고, 가도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광을 가로막는 네 겹의 벽]

 

포괄적 관광(inclusive tourism)을 다룬 연구와 지침은, 장애인의 여행을 가로막는 장벽을 크게 네 가지로 묶는다: 물리적 장벽, 정보·의사소통 장벽, 태도의 장벽, 그리고 경제적 장벽이다.

 

1. 물리적 장벽 – 계단·턱·문 하나가 도시 전체를 막는다

 

건물 입구의 계단, 턱, 좁은 문과 복도, 경사가 가파른 길,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 장애인 화장실의 부재. 

이런 것들은 걷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휠체어 사용자·보행보조기 이용자·고령자에게는 도시 전체를 막아 버리는 벽이 된다.

 

접근 가능한 관광을 위한 기본 요건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사실 거창하지 않다.

 

- 계단 없는 출입구와 낮은 문턱

- 충분히 넓은 출입문과 복도

- 손잡이가 있는 계단과 완만한 경사로

- 곳곳에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휴식 공간

- 휠체어·보행보조기를 둘 수 있는 공간

- 실제로 사용 가능한 장애인 화장실

 

그러나 많은 호텔·식당·박물관·관광지는 여전히 이런 기본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접근성 보고서는 “관광 인프라·교통·사이트의 물리적 제약은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의 관광 참여를 제한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반복해서 지적한다.

 

2. 정보와 의사소통의 장벽 – “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두 번째 벽은 정보의 부재다. 많은 장애인은 “못 가서가 아니라,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여행을 포기한다. 

웹사이트에 휠체어 접근 가능 여부, 엘리베이터·경사로·장애인 화장실·시각장애인 안내·수화통역·보조견 허용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거나, 있어도 모호하고 최신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엔·UNWTO는 그래서 접근 가능한 정보(Accessible Information)를 별도 권고안으로 다루며, 웹사이트와 앱·표지판·브로슈어·매표와 안내 과정에서 쉬운 언어·대체 텍스트·자막·점자·수화·명확한 아이콘 등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럼에도 많은 여행사는 여전히 장애 관련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심지어 “우리 시설은 장애인을 위한 곳이 아니다”라며 예약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3. 태도의 장벽 – 눈길과 말투가 만드는 “보이지 않는 벽”

 

세 번째는 태도(attitudinal barriers)다. 연구들은 관광 활동에서 장애인이 겪는 가장 힘든 경험 중 하나로, 직원과 다른 관광객의 시선과 반응을 꼽는다.

 

- 예약·체크인 시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동행인에게만 말을 건다.

- “이런 데까지 오시다니 대단하다”는 식의 잘못된 동정.

- 같은 수영장·식당·관광버스를 쓰기 꺼려하는 다른 손님들의 불만.

 

루마니아 사례 연구에서는, 장애아동을 둔 가족에게 관광의 가장 큰 장벽이 “시설 부족”이 아니라 사회적 태도라고 응답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다른 연구들도, 부정적 태도와 차별이 물리적 장벽 못지않게 여행 의지와 경험을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4. 경제적 장벽 – 더 많이 내고도 덜 누리는 여행

 

마지막으로 돈의 문제가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많은 장애인이 평균적으로 낮은 소득·고용 기회 부족을 겪고 있고, 여행 비용 자체도 비장애인보다 더 많이 든다고 지적한다. 

보조기구·도우미·특수 교통·장애인 친화 숙소는 종종 비쌀 뿐 아니라, 동행인까지 포함해 2인·3인 비용이 기본이 된다.

 

결국 법과 인프라가 조금 개선되더라도, “여행을 떠날 여유”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부 국가는 저소득층·장애인을 위한 여행 바우처·교통할인·보조금 정책을 운영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관광은 “먼 얘기”로 남아 있다.

 

[“관광은 모두의 권리”라는 말을 진심으로 하려면]

 

유엔과 UNWTO는 최근 문서에서 반복해서 이렇게 말한다. 

“접근 가능한 관광은 인권의 문제이자, 예외적으로 큰 시장이다.” 

1억 명이 넘는 장애인과 고령자, 그리고 그 가족·보호자까지 포함하면, 접근 가능한 관광의 잠재 수요는 수조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그러나 많은 정부와 기업은 여전히 이를 “비용 많이 들고 소수만 혜택 보는 복지성 사업” 정도로만 바라본다. 

독일 국제협력공사(GIZ)의 분석은 관광에서의 포용이 더디게 진행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 정부의 의지 부족

- 기업의 인식 부족

- 인클루시브 교육·훈련의 부재

- 초기 투자비용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 열악한 노동조건(장기적 서비스 품질 저하)

- 복잡한 가치사슬과 비공식부문에 대한 무관심

 

다시 말해, “어떻게 할지 몰라서 못 한다기보다, 아직 진지하게 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관광, 무엇부터 바꿀 수 있을까]

접근 가능한 관광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매우 두껍지만, 몇 가지 핵심만 추려 보면 이렇다.

 

1. 법과 기준을 먼저 깔아 두기

- 장애인 접근권을 명시한 법·건축 기준·교통 규정·관광지 지침을 만들고, 실제로 집행·점검한다.

- 공공조달 때 접근성 기준을 의무화해, 새로 짓는 인프라는 처음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도록 한다.

 

2. 정보와 예약 과정을 ‘접근 가능’하게 만들기

- 웹사이트·앱·브로슈어에 접근성 정보를 표준화해 제공하고(예: 휠체어 접근 가능 여부, 점자·수화·오디오 가이드, 엘리베이터·경사로·장애인 화장실 위치), 쉬운 언어와 대체 텍스트, 자막을 포함한다.

- 예약·문의 과정에서 장애 관련 질문에 정확히 답할 수 있도록, 직원 교육과 스크립트를 준비한다.

 

3. 직원과 가이드를 먼저 바꾸기

- 호텔·여행사·관광지·교통업체 직원에게 장애 인식·접근성·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정기 교육을 실시한다.

- ‘포용적 안내(Inclusive Guiding)’ 매뉴얼이 제안하듯, 투어 코스를 짤 때부터 평탄한 길·안전한 횡단보도·쉬는 자리·화장실·소음·군중 밀집도를 고려하도록 하고, 사전에 그룹의 필요를 묻고 설명하는 습관을 들인다.

 

4. 장애인을 단지 ‘고객’이 아니라 ‘동료·사업자’로 초대하기

- 관광 분야 고용·창업에서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포함시키고, 교육·자본·보조기기 접근성을 높인다.

- 장애 당사자 단체와 함께 점검·자문·테스트를 진행해, “당사자의 경험”이 설계에 반영되도록 한다.

 

[본 칼럼이 남기고 싶은 문장]

 

관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주 “모두의 것”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광은, 계단을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몸,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는 눈,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귀, 낯선 환경에서도 긴장하지 않는 마음을 어느 정도 전제로 삼아 왔다.

 

본 칼럼을 마치며, 이렇게 적어 보고 싶다. “접근 가능한 관광”은 휠체어 표지를 붙이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누구를 ‘기본값’으로 상상하며 도시와 여행을 설계해 왔는지, 그 기본값을 이제 바꾸자는 제안이다.

다음에 어떤 도시의 관광정책이나 호텔·여행상품을 볼 때, 우리는 이렇게 한 번 더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여행은, 몸이 조금 다르면 여전히 가능한가.

나이가 더 들고, 시력과 청력이 줄어들어도 여전히 가능한가.

혹은 오늘, 마음과 몸이 지쳐 있는 누군가에게도 열려 있는 여행인가.

 

관광이 정말로 모두의 권리라면,

이제 관광이 멈추는 곳이 계단 끝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과 책임감의 끝이어야 한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