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칼럼 55] 맛있는 도시, 살기 힘든 도시 – 음식관광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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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인사이트

[관광칼럼 55] 맛있는 도시, 살기 힘든 도시 – 음식관광의 두 얼굴

관리자 2026-09-18 조회수 95

 

어느 도시를 떠올릴 때, 우리는 종종 먼저 그 도시의 맛을 떠올린다. 

조개와 와인이 어우러진 항구의 저녁, 카레 향이 퍼지는 골목, 국물 소리가 새벽을 여는 시장. 최근 연구들은 이런 음식관광(culinary/food tourism)이 단순한 먹방을 넘어, 한 도시의 문화·정체성·경제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동시에, 같은 연구들은 이 맛있는 도시가 점점 살기 힘든 도시가 되어 가는 현상을 함께 보여 준다. 관광칼럼 55에서는 이 “맛있는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음식관광, ‘맛으로 장소를 읽는 여행’]

 

학자들은 음식관광을 “어떤 장소의 맛을 통해 그 장소의 감각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음식을 통해 한 장소의 역사·문화·관계를 통째로 맛보려는 시도다.

 

연구들을 보면, 음식은 무형문화유산의 한 축으로서 관광지 마케팅과 문화관광의 핵심 요소가 되었고, 많은 목적지가 “로컬 푸드·전통 요리·시장 체험”을 전면에 내세워 여행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여행자는 “현지인처럼 먹어 보고 싶다”, “진짜 그 동네의 맛을 알고 싶다”는 욕망으로 골목과 시장을 찾고, 그 경험이 여행 만족과 재방문 의도에 큰 영향을 준다고 답한다.

 

[우리는 무엇을 ‘진짜 맛’이라고 부르는가]

 

그러나 여기서 하나의 고전적인 난제가 등장한다. 

“진짜(local, authentic)란 무엇인가.” 음식관광 연구에서 ‘진정성(authenticity)’은 늘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지만,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왕(Wang, 1999) 이후 많은 연구는, 관광에서의 ‘진정성’이 실제 역사나 원형보다 관광객이 머릿속에 그리고 온 이미지와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현지음식을 ‘진짜 같다’고 느끼는 기준은, 그 장소에 대한 선입견·미디어 이미지·스토리텔링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한 연구는 관광객이 ‘현지의 진짜 음식 경험’으로 느끼는 조건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 자신이 상상해 온 “그 나라다운” 모습과 대략 맞을 것

- 주변 환경이 “현지스러운 분위기”일 것

- 음식과 공간 어딘가에 ‘전통·자연스러움’이 느껴질 것

 

심지어 최근 지중해 섬들을 분석한 연구는, 비(非)현지 음식점(예: 타국의 ‘에스닉’ 레스토랑)이 현지 전통음식점보다 더 ‘정통적이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한다. 

관광이 집중된 섬들에서는, 지역 요리보다 이탈리안·일식·타이 음식점이 더 ‘진짜 같다’는 후기를 받기도 했고, 이때 진정성은 레시피의 역사나 장소성이 아니라 분위기·서비스 스타일·디지털 리뷰에 의해 구성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요약하면, 음식관광에서 말하는 ‘진짜’는 종종 실제 역사나 공동체의 기억이 아니라, 소비자의 기대와 시장이 함께 만들어 낸 “사회적 진정성”에 가깝다.

 

[맛있는 도시가 부동산을 밀어 올릴 때]

 

음식관광의 경제적 효과는 분명하다.

새로운 식당과 카페, 와이너리와 마켓, 쿠킹클래스와 투어는 일자리를 만들고, 농업·수산·수공예를 끌어 올리며, 도시 브랜드를 새로 쓰게 한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지중해·터키 일부 도시 사례를 보면, 음식관광이 젠트리피케이션의 강력한 촉매가 되기도 한다.

 

멕시코와 페루의 두 역사도시를 비교한 한 연구는, 관광과 외식산업의 결합이 “식품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ción alimentaria)”을 낳고 있다고 말한다.

전통 시장과 소박한 식당들이 관광객 대상 레스토랑·디저트숍·브런치 카페로 바뀌면서, 식재료 가격과 외식 물가가 오르고, 저소득 주민이 일상적으로 접근하던 음식과 공간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연구는 이를 “브랜딩된 음식도시에서, 오래된 도시 거주자가 살기 어려워지는 현상”으로 표현한다.

 

터키 이즈미르 인근 우를라(Urla)를 다룬 연구는 좀 더 직접적인 표현을 쓴다.

이 지역은 지난 20년간 와이너리·레스토랑·농가 식당이 급증하며 미식관광의 핫스폿이 되었고, 동시에 “가스트로 구동 젠트리피케이션(gastro-driven gentrification)”의 대표 사례가 되었다. 

 

보고에 따르면,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가 급등하고 오랜 주민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며 생활권이 관광객과 역이주한 중상층 라이프스타일 이주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식당·와이너리·농산물 직거래장터가 늘어난 자리에, 동네 잡화점·저렴한 식당·전통 식당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한국의 몇몇 ‘맛집 거리’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길거리 음식, 관광객의 입과 단속의 눈 사이]

 

음식관광의 중요한 무대인 길거리 음식(street food)도 비슷한 긴장을 겪는다. 

한 리뷰는 관광지에서 길거리음식 경제가 특히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많은 노점·푸드카트·시장 상인은 얇은 마진과 불안정한 허가에 기대어 운영되는데,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가 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성수기에는 물·식자재·쓰레기 처리 인프라가 감당 못 할 만큼 몰리고 위생과 안전을 명분으로 허가 비용과 규제가 급증하며 그 틈을 타 대형 프랜차이즈·자본력이 있는 사업자가 진입해 전통 노점을 대체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결국 “관광객이 많아져 장사가 잘될 수 있는 기회”가, 규제·임대료·원가 상승을 통해 오래된 노점과 소상공인을 밀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로컬들은 “원래 이 동네 맛은 사라지고, 관광객 입맛에 맞춘 메뉴와 가격만 남았다”고 말한다.

 

한편, 몇몇 도시와 연구는 길거리 음식 문화를 지키기 위한 실험을 제안한다. 예컨대,

 

- 회전제 허가제(여러 소상공인이 하나의 허가를 나눠 쓰며 주기적으로 교대 영업)

- 허가 수입의 일정 비율을 상수도·위생·저장·교육 같은 벤더 지원 인프라에 재투자하는 모델

- 군집 지역 과밀을 막기 위한 실시간 수요 분산(앱으로 덜 붐비는 먹거리 구역을 제안) 등을 시도하자는 제안이 있다.

 

요지는 간단하다. “문제는 길거리 음식이 아니라,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몰리는 사람들과, 그 틈을 타 규제와 자본이 결합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전유, ‘남의 밥상’에서 돈 버는 방식]

 

음식관광이 커질수록,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에 대한 논의도 함께 커진다. 말레이시아 쿠칭의 음식을 다룬 연구는, 전통 음식이 관광상품으로 상업화되는 과정에서 “오해·착취·획일화(misrepresentation, exploitation, homogenisation)”가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 외부 기업이 전통 음식을 자신들의 브랜드로 포장해 수익을 독점하거나

- 레시피의 역사와 맥락은 지운 채 “인스타용 예쁜 메뉴”로 재구성하고

- 현지 요리사를 값싼 노동력 정도로만 취급하는 방식이 그렇다.

 

우즈베키스탄 남부 수르한다리야를 다룬 다른 논문도, 음식관광의 문제로 과잉상업화·문화적 전유·환경 부담·경제적 불평등을 꼽는다. 

전통 요리가 관광객 입맛과 ‘포토제닉함’을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변형되면서, 원래의 맥락과 의미는 희미해지고, 지역 재료 대신 값싼 수입 재료가 쓰이며, 수익의 상당 부분이 외부 사업자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음식과 문화는 늘 섞이고 변해 왔다. 

문제는 누가 이름을 걸고, 누가 이익을 가져가며, 누가 기억을 지키는가다. 

구전으로 내려온 레시피와 손맛, 시장과 밭과 어판장의 노동이 “누군가의 스토리텔링과 브랜딩” 속에서 지워질 때, 음식관광은 더 이상 교류가 아니라 착취가 되기 쉽다.

 

[본 기고가 남기고 싶은 질문]

 

관광을 통해 음식을 만나는 일은, 분명 기쁜 일이다.

낯선 도시의 국물 한 숟가락이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들이 함께 말해 주는 사실은 이렇다.

 

맛있는 도시가 되는 일은,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비싸고 버거운 도시가 되는 일일 수 있다.

 

그래서 본 기고를 마치며, 몇 가지 질문을 남겨 보고 싶다.

 

- 우리는 “로컬 맛집”을 찾으면서, 그 로컬이 계속 그 자리에 살 수 있을 만큼의 도시를 함께 상상하고 있는가.

- 우리는 “진짜 같은 맛”을 찾으면서, 그 ‘진짜’가 누구의 기대와 브랜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한 번쯤 의심해 보고 있는가.

- 우리는 “남의 밥상”에서 얻는 감동과 영감을, 그 밥상을 지켜 온 손들의 이름과 삶을 기억하는 쪽으로도 조금은 돌려 보내고 있는가.

 

다음 여행에서 우리가 들르는 시장과 식당, 길거리 포장마차 앞에서,

이렇게 한 번만 더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이 한 끼가 내게 남기는 기억만큼,

이곳의 사람과 도시에도 괜찮은 한 끼가 되고 있을까.”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