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칼럼에에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전쟁터, 학살지, 재난 현장, 핵사고 지역, 테러와 참사가 남긴 자리들.
우리는 왜 이런 장소를 찾아가는가. 그리고 그 발걸음은, 누구의 기억과 상처 위에 서 있는가.
[다크 투어리즘,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연구자들은 다크 투어리즘을 “죽음·재난·고통과 연관된 장소를 방문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전쟁터와 학살지, 수용소·감옥·학살 현장, 지진·화산·핵사고 같은 자연·기술 재난지, 테러나 대형 참사가 벌어진 자리까지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간다.
폼페이, 아우슈비츠, 캄보디아 킬링필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쓰나미 피해지, 최근의 전쟁·학살 현장을 찾는 여행도, 이 넓은 의미의 다크 투어리즘에 포함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현상은 더 눈에 띄게 늘었다. 대규모 자연재해 직후의 산사태·화산지대, 여전히 전투·폭격이 이어지는 전쟁터, 핵사고·테러 현장에서조차 관광 상품이 등장하고, 전용 웹사이트·투어 상품·인스타그램 해시태그가 생겨나는 상황이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인간의 어두운 것(dark)을 향한 호기심과 학습 욕구, 그리고 상업적 기획이 결합된 새로운 관광 형태”라고 진단한다.
[기억과 배움, 그리고 관음증 사이의 얇은 선]
다크 투어리즘을 둘러싼 가장 큰 논쟁은, 이것이 기억과 배움의 실천인가, 아니면 고통의 상품화인가라는 질문이다.
비판자들은 다크 투어리즘이 “타인의 고통과 비극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관음증적 여행”이 될 위험을 지적한다. 비극 현장에 입장료를 받고, 희생자의 물품을 기념품처럼 판매하며, 가벼운 인증샷과 “무섭다”“충격적이었다”는 감상으로 소비하는 순간, 그 장소는 애도의 공간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무대로 전락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를 “죽음과 재난의 상업화(commercialisation of death and disaster)”라고 부르며, 비극을 이윤의 원천으로 전환하는 윤리적 문제를 지적한다.
반대로 옹호자들은, 잘 설계된 다크 투어리즘이 기억과 학습, 공감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유네스코와 ‘기억의 장소 네트워크(International Coalition of Sites of Conscience)’는, 과거의 폭력·인권침해 현장을 기억 공간으로 보존하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장소들은 단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넘어서,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질문하게 만들 수 있다.
영국 연구자 필립 스톤은 다크 투어리즘이 “상상력의 경계를 넓히고, 현대 여행자에게 삶과 죽음·폭력에 대한 도덕적 성찰을 강제하는 충격의 지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우슈비츠·학살지·전쟁 박물관을 방문한 이들의 인터뷰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다수의 방문자가 “역사책으로만 보던 일이 내 몸으로 다가오는 경험”, “불편함과 죄책감을 동반한 깊은 성찰”을 언급하기도 했다.
결국 차이를 가르는 것은 의도와 설계, 그리고 태도다. 기억과 애도를 중심에 둔 방문과, 자극과 스릴을 좇는 방문은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것은 전혀 다르다.
[재난을 ‘희망 관광’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핵사고·자연재난 지역은 이 논쟁을 특히 선명하게 드러낸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같은 핵사고 지역은 오랫동안 “재난의 상징이자 출입 금지 구역”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관광·교육·기억을 결합한 새로운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 이전까지 체르노빌·프리피야트 일대가 가이드 투어·박물관·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관광지로 점차 변모해 왔다. 2025년에는 체르노빌 원전과 인근 도시 슬라부티치가 협력을 맺고, “역사 기억 보존과 지역 이미지 제고, 생태·핵에너지·지속가능발전 교육”을 목표로 관광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후쿠시마에서도 일부 지역의 대피령이 해제되면서, 원전 주변 마을과 사고 현장을 찾는 방문객이 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다크 투어리즘” 대신 “희망 관광(hope tourism)”이라 부르며, 재난 이후의 복구와 재생, 지역 주민의 삶을 함께 보여 주려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크 투어리즘이 단지 “재난의 잔해를 보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회복과 회복탄력성을 배우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한편으로, 아직도 방사능·트라우마·정치적 갈등이 남아 있는 현장에서 “관광”을 말하는 것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는 비판도 함께 존재한다.
뉴질랜드·모로코·라팔마 등의 사례를 다룬 기사와 연구는, 화산·지진 같은 자연재해 이후 관광이 재건 재원과 심리적 치유의 통로가 될 수 있지만, 그 시기와 방식·수위는 피해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조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난 직후부터 ‘투어 상품’을 내는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크 투어리즘 2.0 – 관음에서 기억으로]
최근 논의에서는, 전통적인 관음적 다크 투어리즘을 넘어 “다크 투어리즘 2.0”을 지향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한 2026년 논평은 새 버전의 다크 투어리즘을 이렇게 정의한다. “죽음·폭력·재난의 장소를 찾되, 중심에 두는 것은 윤리, 기억, 책임이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는 세 가지다.
첫째, 무엇을 보여 주느냐보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대한 전환이다.
단지 “이곳에서 몇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그 사건이 일어나게 한 구조와 맥락, 당시의 선택과 침묵, 오늘의 인권·정치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는지까지 설명하려는 시도가 중요해진다.
둘째, 지역 공동체와의 동반자 관계다.
기억의 장소를 운영하는 박물관·추모관·가이드·정부기관은, 피해자와 유족·주민의 동의와 참여를 바탕으로 전시·해설·관람규칙을 설계해야 한다.
개인 물품·증언·사진을 전시할 때에는 사전 동의와 개인정보 보호를 철저히 지키고, 수익의 일부를 지역 보건·교육·인프라·기억사업에 재투자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강조된다.
셋째, 관광객 자신을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일부 가이드라인은 방문 전부터 역사 맥락과 기본 예절, 사진·행동 규범을 안내하고, 현장에서는 감정적 자극 대신 맥락 있는 해설과 숙연한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이는 방문자를 “스릴을 소비하는 손님”이 아니라, “기억과 책임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로 대하는 전환이기도 하다.
[다크 투어리스트를 위한 최소한의 약속]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불편함과 가능성을 함께 안고 가고 싶다. 우리 각자가 최소한 어떤 약속을 할 수 있을까. 여러 연구와 가이드라인을 종합해, 다크 투어리스트를 위한 다섯 가지 약속을 적어 본다.
1. ‘왜 가는가’를 먼저 묻는다
- 단지 “무섭다더라, 신기하다더라”는 호기심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 그 장소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2. 사진 한 장이, 누군가의 상처 위에 있지 않게 한다
- 셀카·장난스러운 포즈·자극적인 사진은 자제하고, 촬영이 허용되는지·어디까지 가능한지 현장 안내를 따른다.
- 특히 유족·생존자·애도 중인 사람을 무단으로 찍지 않는다.
3. 말과 몸짓에 ‘애도’의 언어를 입힌다
- 농담·비하·가벼운 호기심의 언어 대신, 조용한 목소리와 단정한 복장, 절제된 감정을 선택한다.
- 현장은 누군가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상처’일 수 있음을 잊지 않는다.
4.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확인한다
- 입장료·투어 비용이 지역 박물관·추모사업·복구·지역사회에 환원되는지, 최소한 확인해 본다.
- 비극을 자극적으로 포장해 판매하면서도, 수익의 행방이 불투명한 투어나 기념품은 피한다.
5. 돌아와서도, 잊지 않는다
- 그곳에서 본 것을 단지 “무서운 장소 후기”로 소비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역사·인권·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 가능하다면, 관련 교육·시민단체·캠페인에 관심을 이어 가며, 기억이 곧 현재를 바꾸는 힘이 되도록 한다.
[남기고 싶은 문장]
우리는 어두운 장소를 찾으면서, 종종 이렇게 말한다. “잊지 않기 위해 간다.”
그 말이 진심이 되려면, 우리의 발걸음과 소비, 사진과 리뷰, 그리고 침묵과 질문 속에 기억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가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칼럼을 이렇게 마무리해 보고 싶다.
다크 투어리즘은, 결국 우리가 타인의 고통과 죽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증인이 되기를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이 언젠가 어느 전쟁터와 학살지, 재난의 현장을 찾게 된다면,
그곳에서 가장 먼저 꺼내 드는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나는 여기서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라는 질문이기를 바란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