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여행을 준비할 때, 우리는 검색창에 한두 문장을 던져 넣기만 하면 된다. “10월, 3박 4일, 아이랑, 너무 비싸지 않게.” 그러면 플랫폼은 어제 내가 본 항공권과 호텔, 지난 휴가 때 묵었던 숙소 평점, 카드 사용 패턴까지 뒤섞어 “당신에게 꼭 맞춘” 추천 일정을 내놓는다.
화면 속 문장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여행 파트너입니다.”
이 AI 여행 파트너에게 조용히 되물어 보고 싶다.
“당신은 정말, 나에게만 친절한가.”
[AI, 여행을 더 편하게 만든 건 분명하다]
연구들을 보면, 인공지능은 이미 관광산업 곳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의 검색 기록·예약 이력·선호도·위치·시간대 같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목적지·숙소·맛집·액티비티를 개인별로 추천한다.
한 종합 리뷰에 따르면, AI 기반 추천시스템은 약 85%의 정확도로 이용자 취향을 예측했고, 여행자 참여도(클릭·예약 전환)를 평균 15% 높였다고 한다.
채팅봇과 가상 비서는 24시간 실시간 상담을 맡는다.
항공권 변경, 체크인, 룸서비스 요청, 주변 추천까지 사람이 받던 문의의 상당 부분이 챗봇으로 흡수되고 있고, 응답 속도와 처리량 면에서는 인간 상담을 압도한다.
호텔들은 AI를 이용해 방 온도·조명·TV 채널을 자동으로 맞추고, 과거 숙박 이력을 바탕으로 “늘 묵던 베개·방향”을 미리 세팅해 두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업자 입장에서 AI는 수익관리의 핵심 도구가 되었다.
항공·호텔·OTA(온라인 여행사)의 상당수가 머신러닝 모델을 활용해 요일·시기·검색량·이벤트·날씨·경쟁사 가격 등을 실시간으로 반영해 가격을 조정한다.
2024년 기준 조사에서, 글로벌 호텔 체인의 약 37%가 이미 AI 기반 수익·요금 관리를 도입했고, 29%가 도입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
요약하면, AI는 나에게 맞춤형 옵션을 더 빨리, 더 많이, 더 편하게 보여 주고, 공급자에게는 수익과 효율성을 안겨 준다. 이 점만 보면, AI는 관광의 ‘착한 혁신’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와 옆 사람의 가격이 다르다면]
문제는 이 편리함 뒤에 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점이다. AI는 추천뿐 아니라 동적 가격(dynamic pricing)과 개인화된 가격(personalized pricing)을 가능하게 만든다.
같은방·같은 항공편이라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보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알고리즘 가격 책정을 연구한 논문들은, AI가 수요·공급에 맞게 가격을 조정하는 수준을 넘어, 이용자별 검색 이력·기기·위치·충성도 등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가격을 “알아서” 제시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지적한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헤비 유저·충성 고객일수록 더 비싸게 뜬다”는 중국의 이른바 ‘살수(殺熟, 단골 차별)’ 논쟁이 대표적 사례다.
여행·항공·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장기간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같은 상품이라도 오래된 고객에게 불리한 가격을 제시한다는 의혹이 사회적 논쟁이 된 바 있다.
알고리즘 가격 차별을 다룬 연구는 이렇게 정리한다. “알고리즘은 가격 차별을 더 세밀하고, 더 자동화하며, 더 눈에 띄지 않게 만든다.”
문제는 이런 차별이 언제나 “부자에게 더 비싸게, 가난한 이에게 더 싸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치·기기·과거 구매 패턴 같은 간접 변수들이 소득·인종·성별·연령 같은 민감정보를 대리하게 되면, 특정 집단에 일관되게 불리한 가격이 배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도시의 승차공유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다인종·저소득 거주지역을 오가는 이동의 평균 요금이 거리·시간을 통제한 뒤에도 일관되게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알고리즘 자체에 ‘인종’이라는 변수를 넣지 않았음에도, 위치와 수요·공급 패턴이 간접적으로 차별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결과로 드러나는 차별(disparate impact)”이라고 부른다.
여행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특정 국가·도시·동네에서 접속하면 항상 더 비싼 가격이 뜬다거나, 특정 기기(예: 고가 스마트폰·맥북)를 쓰는 이용자에게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패턴이 쌓인다면, 그것은 알고리즘이 “누가 더 많이 낼 의향이 있는지” 학습한 결과일 수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 수익 전략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투명성·공정성·차별 금지 원칙은 쉽게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모든 것을 보는 호텔’과 일하는 사람들]
AI는 여행자만이 아니라, 관광·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도 바꾸고 있다.
특히 호텔·리조트 같은 숙박업에서는 인력 위기와 비용 압박 속에서, AI 기반 스케줄링·성과관리·감시 시스템 도입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최근 미국 노동 관계위원회(NLRB)는, 호텔·서비스업에서 활용되는 AI 인력관리 도구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도구들은 객실청소 직원 위치 추적, 시간당 청소 객실 수 실시간 모니터링, 고객–직원 대화의 감성 분석을 통한 서비스 점수 부여, 사내 메신저 대화 내용 분석 등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메모랜덤에 따르면, 이런 시스템이 임금·근로조건·노조 활동에 대한 직원들의 대화를 모니터링하고, 노조 관련 활동을 한 직원에게 불리한 스케줄·근무시간을 자동 배정하는 데 쓰인다면, 이는 노동 3권을 침해하는 ‘감시’에 해당할 수 있다.
또 다른 연구는, 환대산업에서 AI·자동화가 한편으로는 하우스키퍼용 비상 버튼·위치 추적 등 안전 장치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항상 감시받는 느낌”을 키우고, 고객 평점과 알고리즘 평가에 지나치게 종속되는 노동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고객 리뷰·별점·음성 톤 분석 결과가 알고리즘을 통해 개인 성과 점수로 환산되고, 이 점수가 승진·배치·근무시간에 직접 영향을 미치면, 직원들은 “고객의 부당한 요구나 폭언도 참을 수밖에 없는” 압력에 놓일 수 있다.
AI 호텔 도입을 분석한 또 다른 연구는, 보안·안전·운영 효율 측면에서 AI 기반 CCTV·안면 인식·실시간 행동 분석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정보·감시·데이터 활용에 대한 명확한 규범과 투명성이 없으면, 직원과 고객 모두에게 불신과 저항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편리한 언택트 서비스”를 누릴수록, 그 뒤편에서 누군가는 더 밀도 높은 감시와 압박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AI가 짜는 여행이 되지 않으려면]
말하고 싶은 것은, “AI를 관광에서 쓰지 말자”가 아니다. 이미 많은 연구가 보여 주듯, AI는 고객 만족·개인화·수익 관리·안전·정보 탐색 등에서 분명한 장점을 제공한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원칙과 질문 없이 이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느냐이다.
관광에서 AI를 사용할 때, 최소한 다음 네 가지 질문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 누가 더 잘 보이게 되고, 누가 더 잘 안 보이게 되는가
추천·검색·정렬 알고리즘은 일부 숙소·식당·투어를 상위에 고정 노출시키고, 나머지를 사실상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작은 로컬 사업자·비영어권·신규 업자는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항상 ‘뒤 페이지’에 밀려나지 않는지, 플랫폼과 정책이 점검해야 한다.
- 누가 더 많이 내게 되는가
동적·개인화 가격이 정말로 “수요에 따라 공정하게” 작동하는지, 특정 집단·지역·기기 사용자에게 일관된 불이익을 주고 있지 않은지, 기업과 규제기관이 함께 모니터링해야 한다.
최소한,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상한선, 취약계층 보호 장치는 필요하다.
- 누가 더 많이 감시당하는가
호텔·관광업 종사자들이 AI 기반 감시·평가 시스템 아래에서 노동권과 안전,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 노동법과 단체협약, 업계 가이드라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누가 이 데이터를 소유하고, 누가 설명할 책임이 있는가
여행자가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활용되는지, 어떤 추천·가격·결정에 사용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왜 이 옵션이 추천되었는지”, “왜 이 가격인지”를 최소한 한 줄이라도 설명하는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가 관광에서도 기본값이 될 필요가 있다.
[본 칼럼이 남기고 싶은 문장]
AI는 분명 여행을 더 똑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똑똑함이, 여행자와 지역,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더 공정하고 덜 지치게 하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는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마치며, 이렇게 적어 보고 싶다.ㅡ“AI가 나를 잘 아는 여행 파트너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 AI에게 어떤 규칙과 한계를 먼저 알려 주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제 “AI 덕분에 편해졌다”에서 멈추지 말고,
“그 편리함의 비용은 누구에게,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청구되고 있는가”를 묻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언젠가 우리는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AI와 함께 짠 여행은, 누구에게도 과도한 값을 치르게 하지 않는 여행이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