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칼럼 42]여행을 누가 ‘당연한 권리’로 누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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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인사이트

[관광칼럼 42]여행을 누가 ‘당연한 권리’로 누리고 있는가

관리자 2026-09-02 조회수 64


 조금 불편한 질문을 던져 보려 한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경험인가, 아니면 일부에게만 허락된 특권인가.

 

휴가철 공항 사진을 보면, 우리는 쉽게 착각한다. 모두가 떠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숫자를 들여다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

 

[‘여행의 세계지도’가 말해 주는 것]

 

퓨리서치센터가 24개국 2만 4,000여 명을 대상으로 “태어난 나라 밖에 가 본 적이 있는가”를 물었다. 결과는 매우 극단적이다. 

스웨덴·네덜란드 같은 고소득 국가는 응답자의 거의 전원이 해외여행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나이지리아·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 등 상대적으로 1인당 GDP가 낮은 나라에서는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 비율이 극소수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에서 소득과 교육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해외여행 경험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미국의 경우 중위소득 이상을 버는 사람의 91%가 해외여행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중위소득 미만인 사람들 중에서는 66%만이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높은 소득층의 61%가 “10개국 이상”을 다녀온 경험이 있지만, 낮은 소득층에서는 그 비율이 29%에 그쳤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해외여행 경험이 많다는 패턴도 18개국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요약하면 이렇다. 국가 간 불평등, 국가 내 소득과 교육 격차가, “누가 세계를 직접 볼 수 있는가”를 거의 그대로 결정하고 있다.

 

[이동성의 격차, 일상의 이동에서 이미 시작된다]

 

이 불평등은 관광 이전, 일상의 이동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OECD·영국 정부 보고서들은 저소득 가구가 전반적으로 덜 움직이고, 더 짧은 거리를, 더 나쁜 조건에서 이동한다는 점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영국의 한 분석에 따르면, 최저 소득 20% 가구는 평균 가구보다 이동 횟수는 20% 적고, 이동 거리는 40% 짧다. 자동차 보유율과 운전 가능한 인원이 적기 때문에, 출퇴근·교육·사회활동 모두에서 선택지가 제한된다.

 

흥미로운 것은, 최저 소득 가구가 통근과 업무 목적 이동은 적지만, 교육·자녀 등하교 동행 같은 이동은 다른 소득계층보다 많다는 점이다. 

이동에 쓸 수 있는 시간과 돈을 “최소한의 의무 이동”에 써 버리고 나면, 여가나 여행에 쓸 여유는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저소득층이 소득의 약 25%를 통근비로 쓰는 경우도 있는 반면, 평균 가정은 약 13% 수준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교통비가 “이동할 자유”가 아니라 “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 할 비용”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OECD는 이런 이동성 격차가 교육·취업·보건서비스·사회관계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결국 “이동성과 가난이 서로를 강화하는 빈곤의 덫”을 만든다고 분석한다. 

우리는 흔히 관광을 “일상 밖의 비일상”으로 바라보지만, 사실 여행의 출발점은 이렇게 불평등하게 설계된 일상 이동성의 구조 위에 놓여 있다.

 

[문서 속에는 이미 적혀 있는 ‘관광의 권리’]

 

사실 국제사회는 꽤 오래전부터 “쉼과 여행은 권리”라고 선언해 왔다. 

1948년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 제24조는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인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과 여가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명시한다.

제27조는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향유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고 덧붙인다.

 

1966년 채택된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규약(ICESCR)은 제7조에서 “모든 사람은 정당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그 안에는 휴식과 여가,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 유급휴가가 포함된다”고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유급휴가에 관한 협약(C132)과 주휴일 협약 등을 통해, 대부분의 나라에서 최소 연 2주 이상의 유급휴가와 주당 24시간 이상의 연속휴식을 노동자의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관광 분야에서는 1985년 유엔세계관광기구(당시 UNWTO)가 채택한 Tourism Bill of Rights and Tourist Code가 이 흐름을 이어 받았다. 

이 문서는 “일할 권리”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쉼과 휴가, 여행과 관광을 누릴 권리”를 재확인한다. 

1999년 채택된 『관광 글로벌 윤리강령』 제7조 역시 “관광의 보편적 권리”를 천명하며, “지구 자원을 직접 발견하고 향유할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강령은 가족·청년·학생·고령자·장애인 관광과 같은 사회관광(social tourism)을 확대해, 여가·여행·휴가에 대한 폭넓은 접근을 보장할 것을 각국 정부에 촉구한다.

 

문서 속에서는 이미, 여행과 관광이 “사치”가 아니라 인권과 시민권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 권리가 얼마나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느냐이다.

 

[‘모든 이의 권리’가 아니라 ‘일부의 기본값’인 현실]

 

세계인권선언과 각종 선언문이 보장하는 것은 “쉼과 휴가를 누릴 시간과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기본권에 접근하는 수준부터 큰 차이가 난다.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 고용, 저임금은 “유급휴가” 자체를 사치로 만들고, 사회보험 밖에 있는 비정규·플랫폼 노동자·자영업자에게는 주휴와 휴가의 권리조차 명목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앞서 본 이동성·교통 불평등이 겹치면, “쉬고 싶어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의 층이 두텁게 쌓인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고소득·고학력·도시 거주자, 안정된 고용을 가진 사람들에게 여행은 “마땅히 누릴 자격 있는 보상”이 된다.

퓨리서치의 여행 경험 조사는 이 격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계 상위 소득국 중 일부에서는 거의 모든 응답자가 해외여행 경험을 말하는 반면, 저소득 국가에서는 대부분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다”고 답하고 있다. 

그 안에서도 소득과 교육이 높은 층이 훨씬 더 많은 해외를 경험하고 있는 구조다.

 

관광을 인권과 시민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연구자들은, 세계인권선언과 ICESCR, ILO 협약, 유엔세계관광기구의 윤리강령·권리선언 등을 종합하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쉴 수 있으며, 문화생활과 여행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선언이 있지만, 실제 사회는 이 권리를 계층·성별·지역·이주배경에 따라 다르게 분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관광정책은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관광정책이 이제 “더 많이 오게 할 것인가”를 넘어서 “누가 갈 수 있게 도울 것인가”를 함께 묻자는 것이다. 몇 가지 방향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사회관광(social tourism)의 재발견이다.

 UNWTO 윤리강령은 가족·청년·학생·고령자·장애인·저소득층을 위한 사회관광을 확대하기 위해 공공부문의 지원을 요청한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저소득 가정·청년·노인·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여행 바우처, 사회보험 연계 휴양소, 교통·입장료 할인 같은 제도가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긴축과 복지 축소 바람 속에서 이런 제도가 축소되거나 “선심성 예산”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많다. 

여행이 정신건강·사회통합·교육·문화참여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감안하면, 사회관광은 복지 지출이자 공중보건·사회정책의 일환으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둘째, 이동성·교통 정책과의 연결이다.

저소득층이 겪는 가장 큰 장벽은 단순히 휴가비가 아니라, “이동을 위한 기본 인프라”일 때가 많다. 

교통비 지원, 청년·학생·저소득층을 위한 대중교통·철도 패스, 농어촌 지역에서의 공공이동수단 확충 등은 교육·고용 뿐 아니라 여가·관광 접근성을 동시에 높여 준다. 

이동할 자유가 곧 배움과 쉼의 자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정책이 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셋째, 비자·국경·안전망의 문제다.

세계인권선언 13조는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해 어떤 나라든 떠날 권리와, 자신의 나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의 비자체계와 국경 관리, 안전·보안 정책은 국적·재산·직업·가족관계 등에 따라 이동 자유를 크게 차등화하고 있다. 

관광정책이 “관광객을 더 받기 위한 비자 완화”에만 머물지 않고, 이주민·난민·이중국적자·무국적자의 이동권, 저소득국 국민의 정당한 여행·학습·문화교류 기회까지 함께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넷째, 관광산업 내부의 노동·시간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관광·서비스업 종사자들은 가장 바쁠 때 가장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세계인권선언과 ILO 협약이 보장하는 “합리적인 노동시간과 주휴·유급휴가”는 관광산업 내부에서조차 온전히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광은 모두의 권리”라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먼저 이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부터 ‘쉬고, 여행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남기고 싶은 문장]

 

관광을 인권과 불평등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이런 장면을 동시에 보게 된다. 

한쪽에서는 어느 나라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매년 새로운 목적지를 찾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평생 한 번도 국경을 넘지 못하는 인구가 압도적 다수다. 

어떤 이에게 여행은 “힘든 나를 달래 주는 당연한 보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속에서만 존재하는 다른 세상”이다.

 

[마치며, 이렇게 적어 보고 싶다.]

 

여행은 모두의 권리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세계는, 그 권리를 누구는 기본값으로, 누구는 평생의 소원으로 나누어 주었다.

 

이제 관광정책과 산업은 “더 많이 오게 할 것인가”뿐 아니라,

“누가 떠날 수 있게 도울 것인가, 그리고 그 떠남이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게 할 것인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여행을 특권이 아니라 진짜 권리에 가깝게 만들기 위한 일은,

 

결국 우리가 “누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멀리 움직일 수 있는 사회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인 선택에서 시작된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