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질문으로 시작해 보고 싶다. “여행은 정말 우리를 치유하는가, 아니면 잠시 잊게만 해 주는가.” 팬데믹을 지나면서 “한 번 좀 떠나야겠다”는 말이 일상 인사가 되었고, 여행과 정신건강의 관계는 더 이상 감성적인 수사가 아니라, 연구실과 정책 테이블에서 다뤄지는 주제가 되었다.
[여행과 행복, 연구가 말해 주는 것들]
여행이 행복과 주관적 안녕감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여러 나라의 연구에서 반복해서 확인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는,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은 가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여행 전과 후 모두 정서적 행복 수준이 더 높았고, 특히 여행 중에는 일상생활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감정을 보고했다고 정리한다.
다만 이 연구는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 자체는 여행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여행 빈도나 일수도 장기적 삶의 만족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최근 캐나다 퀘벡 주민 1,314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온다.
연구진은 지난 2년간 여가 목적의 여행을 다녀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했는데, 여행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긍정 정서가 더 높고 부정 정서는 낮으며, 삶의 만족도도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같은 연구에서 ‘거의 안 가는 사람–가끔 가는 사람–자주 가는 사람’ 세 집단을 나눴을 때, 가장 자주 여행하는 집단이 주관적 안녕감 점수가 가장 높았다.
여행과 행복의 관계를 정리한 통합 검토 논문은, 휴가가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경로를 “관계감, 자율성, 숙련감, 새로움, 긍정적 자아, 감정 변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의미감”이라는 여덟 가지 키워드로 묶는다.
다시 말해, 여행이 주는 행복은 단순한 기분 전환을 넘어 “나답게 선택하고, 배우고, 새로운 나를 시험해 보고,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의미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자연 속 여행이 마음에 남기는 것]
정신건강 효과를 보다 직접적으로 측정한 연구들도 있다.
에콰도르의 한 보호구역에서 울창한 숲과 강을 배경으로 자연 기반 관광을 경험한 대학생 67명을 대상으로 한 2025년 연구는, 참여자들이 사전에 ‘극심한 수준’의 우울·불안·스트레스 점수를 가진 집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자연 관광 경험 이후 이 세 지표가 모두 유의미하게 낮아졌다고 보고한다.
연구에서 사용한 DASS-21 척도 결과, 우울·불안·스트레스 점수는 모두 통계적으로 크게 감소했고, 임상적으로도 의미 있는 수준의 개선을 보였다.
다만 6개월 뒤 추적 조사에서는 이 효과가 대부분 사라져 장기적 임상 효과는 유지되지 않았고, 연구진은 “긍정적 효과를 유지하려면 자연과의 정기적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중국에서 진행된 또 다른 연구는, 팬데믹 이후 관광이 개인 정신건강을 어떻게 돕는지 분석했다.
설문과 요인분석, 구조방정식 모형을 활용한 이 연구는 여행의 목적이 주로 휴식과 스트레스 해소에 있고, 실제로 여행 후 정서 상태가 개선되며, 특히 ‘종합적 행동능력’과 ‘신체적 표현’ 영역에서 가장 큰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고한다.
연구진은 정신건강 향상의 핵심이 “내면 심리 특성에서 비롯되어 사회적 적응과 행동능력을 거쳐 나타난다”고 설명하면서, 특히 미혼·무자녀의 청·장년층에서 향상이 가장 뚜렷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여행 특히 자연 속 여행은 우울·불안·스트레스를 단기간에 줄여 주고, 정서적 안정과 활력을 회복하는 데 분명한 도움을 준다.
다만 약효처럼 “한 번 맞으면 끝”이 아니라, 반복적·지속적인 자연 접촉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붙는다.
[왜 행복은 금방 사라지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여행 다녀오면 금방 다시 예전처럼 힘들어지더라”고 느끼는 걸까.
네덜란드와 한국 등에서 진행된 종단 연구들은, 이 현상을 쾌락적 적응(hedonic adaptation)으로 설명한다.
한국에서 225명을 대상으로 장기간 추적한 연구는, 삶의 만족도와 정서 상태가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떨어지지만, 여행을 앞둔 약 15일 전부터 다시 상승해 여행 기간 동안 최고조에 이르고, 여행 후 약 한 달 정도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다시 일상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패턴을 보인다.
이 연구는 행복이 오래가는 이유를 두 가지에서 찾는다.
하나는 기대(anticipation), 다른 하나는 뜻밖의 즐거움(serendipity)이다.
여행 전에 “곧 떠난다”는 기대가 일상의 피로를 덜어 주고, 여행 중 예기치 않게 마주치는 즐거운 경험들이 전반적인 여행 만족도를 끌어올리면서, 여행 후 삶의 만족도 회복 곡선을 더 완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종합 검토 논문들도 대체로 비슷한 그림을 그린다.
휴가는 여행 전·중·직후의 감정적 행복(hedonic well-being)을 높이고, 일정 기간 동안 부정 정서를 줄여 주지만, 장기적인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거나 조건부라고 평가한다.
대신 여러 해에 걸친 패널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여행 빈도가 높을수록 긍정 정서가 많고 부정 정서는 적으며 삶의 만족도도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드러난다.
단발성이 아니라 “삶의 패턴으로서의 여행”이 장기적 행복에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지점이다.
[누가 여행에서 더 큰 도움을 받는가]
여행이 모두에게 똑같이 이로운 것은 아니다. 캐나다·뉴질랜드 등의 연구들은 여행 빈도와 삶의 질 사이를 매개하는 요소로 ‘행복’과 ‘심리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지목한다.
한 연구는 세 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여가여행을 자주 할수록 삶의 질(QoL)이 높아지며, 이때 긍정 정서와 심리적 회복탄력성이 이 관계를 이어 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흥미로운 점은, 대처능력이 약하거나 취약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여행 빈도가 삶의 질에 미치는 긍정 효과가 더 크다는 결과다.
다시 말해, 일상에서 스트레스와 취약성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여행이 회복탄력성과 행복을 북돋우는 “보완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2024년 통합 리뷰는 여행이 줄 수 있는 행복을 “자유, 성취, 사회적 유대, 우연한 기쁨” 네 가지로 개념화하며, 이를 FASS 모델이라고 부른다. 여행에서 강하게 자유롭다고 느끼고, 무언가를 이뤘다는 성취를 경험하며, 타인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예상치 못한 좋은 일들을 자주 마주치는 사람일수록, 여행 만족도와 재방문 의도, 전반적 주관적 안녕감이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여행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개인의 심리적 자원(positive resources)을 보충하는 기회로 볼 수 있다.
여유로운 사람들만 더 행복해지는 사치품이라기보다, 취약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더 큰 효과를 줄 수 있는 “마음의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여행에 접근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여행이 정말 회복을 돕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관광을 ‘정신건강 인프라’로 바라본다면]
본 기고에서 던지고 싶은 제안은 이것이다. 관광을 단순한 소비 산업이 아니라, 사회의 정신건강 인프라 중 하나로 바라보면 어떨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이 우울증·불안장애 같은 임상적 문제를 대체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앞서 본 것처럼 자연 기반 관광은 우울·불안·스트레스를 단기간에 줄이는 효과를 보여 주지만, 6개월 뒤에는 효과가 거의 사라졌다.
또 많은 연구들이 말하듯, 휴가가 주는 행복은 강렬하지만 짧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적응이 찾아온다. 여행은 치료제가 아니라, 회복과 재충전을 위한 보조 인프라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책과 산업은 무엇을 바꿔야 할까. 저는 세 가지 방향을 떠올린다.
첫째, 접근성이다.
퀘벡 연구가 보여주듯,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는 주관적 안녕감에서 분명한 차이가 난다.
그런데 소득·시간·돌봄 부담·건강 등 여러 이유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작 정신적 회복이 더 필요한 집단일 때가 많다.
“누가 여행에 접근할 수 있는가”는 결국 “누구의 마음이 회복될 기회를 갖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둘째, 콘텐츠와 환경이다.
행복 연구들은 기대·우연성·관계·의미·자기 성장 같은 요소들이 여행이 주는 행복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관광상품과 목적지는 단순 소비와 촬영 포인트 위주가 아니라, 깊이 쉬고, 연결되고, 배우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경험을 더 많이 심어야 한다.
자연 속 걷기, 지역 주민과의 진짜 교류, 창작·체험 활동, 마음챙김·명상·치유 프로그램, 종교·영성 여행 등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정신건강 효과를 보여 주는 영역이다.
셋째, 일상과의 연결이다.
단발성 여행의 효과가 짧게 끝난다는 것은, 동시에 일상 속 작은 ‘여행의 순간들’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시와 지역은 거창한 관광지만이 아니라, 주민이 평소에도 자연과 문화, 여유를 경험할 수 있는 산책로·공원·근교 자연·문화시설 등을 갖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할 수 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내 생활권 안에서의 소규모 여행”이 반복될 때, 여행이 주는 회복 효과는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본 기고에서 남기는 문장]
여행은 분명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준다. 그러나 연구들이 말해 주는 더 중요한 사실은, 좋은 여행은 결국 우리를 “다시 나에게로” 데려다 놓는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잃어버렸던 여유와 관계, 나다움과 의미를 잠시나마 회복하게 해 주고, 그 기억이 한동안 우리의 심리적 완충장치가 되어 준다.
마치며, 이렇게 적어 보고 싶다.
이제는 “어디까지 가 봤느냐”보다,
“그 여행이 당신의 마음을 어디까지 회복시켜 주었느냐”를 물어야 할 때다.
그리고 관광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우리는,
그 질문에 당당히 “당신의 마음이 조금은 덜 지치도록 돕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관광을 마음의 인프라로 설계하고 있는가.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