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고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인공지능은 관광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환대와 상상력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 시험하는 거울에 가깝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이 거울을 어떤 얼굴로 들여다보느냐다.
[AI가 바꾸는 여행 준비]
이제 여행자는 검색창에 키워드를 넣기보다, “10월 초 3일, 아이 둘과 함께 갈 수 있는 조용한 바닷마을 추천해 줘”라고 말하듯이 적는다.
생성형 AI 기반 여행 도우미는 이런 자연어 요청을 읽어 호텔·식당·교통·코스가 포함된 일정표를 몇 초 만에 만들어 주고, 비가 오면 실내 코스로, 피곤하면 일정 축소로 실시간 조정까지 제안한다.
연구들을 종합하면, AI는 여행 전 과정에서 “검색”을 “대화”로 바꾸고 있다. 2025년 업계 분석에 따르면 주요 OTA와 항공사, 호텔 체인은 이미 고객문의의 50~70%를 AI 챗봇과 자동응답 시스템이 처리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응답 시간은 평균 40% 줄고, 문제 해결률은 약 30% 향상된 것으로 나타난다.
[맞춤형 경험의 약속과 현실]
대부분의 연구는 AI의 가장 큰 힘으로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를 꼽는다.
PwC가 관광·호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7.6%가 AI 도입의 핵심 목적을 “게스트 경험의 개인화”라고 답했고, 비용 절감이나 효율화보다 높은 비중을 보였다.
AI 기반 추천·일정 시스템을 활용한 그룹은 정적 안내를 따른 그룹보다 만족도가 25~30% 높았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AI 챗봇이 도입된 관광지에서 고객응대 소요시간이 40% 단축되고, 티켓·환불 관련 문의 해결률이 약 3분의 1 향상되었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초개인화에는 그만큼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기반 맞춤형 관광 경험이 확산될수록, 데이터 보호·소비자 보호 장치가 동시에 강화되지 않으면 개인정보 침해와 차별적 가격 책정, 불투명한 알고리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가 “나를 잘 아는 여행 도우미”가 되려면, 우선 그 지식이 어떻게 수집·저장·활용되는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호텔 속 로봇과 ‘코봇’의 등장]
로비를 지나는 배달 로봇, 층계를 오르내리는 청소 로봇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일본 나가사키의 ‘헨나 호텔’처럼 전면 로봇 호텔 실험이 있었지만, 9년이 지난 지금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전면 대체”가 아니라 직원과 함께 일하는 협업 로봇(co-bot)이다.
최근 4성급 호텔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서비스 로봇 도입이 객실 배달·단순 안내 업무를 맡으면서, 직원들이 더 많은 시간을 고객과의 상호작용·문제 해결·업셀링에 쓸 수 있게 해 주었다고 보고한다.
응답 직원들은 “업무 부담과 육체적 피로가 줄어들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일부는 “직무 축소와 대체 가능성에 대한 불안”도 동시에 표현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방향이다. 로봇이 사람을 “덜 쓰기 위한 도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사람에게 반복노동을 덜어 주고 더 창의적·관계적인 역할을 맡길 “업무 재설계의 계기”가 될 것인지. 같은 기술이라도, 어떤 조직 문화와 인력 전략 위에 얹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책과 거버넌스의 빈칸]
UNWTO와 Saxion 대학이 2025년 발표한 ‘관광에서의 AI 채택’ 보고서는, AI가 관광의 효율성과 서비스 질을 높이는 동시에 “책임 있는 도입”을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데이터 보호, 알고리즘 투명성, 소비자 권리, 노동 영향, 중소기업 지원, 그리고 국제적 규범과의 정합성이 그것이다.
UNWTO는 2025년 총회를 앞두고 세 가지 성과물을 추진 중이다.
첫째, 국가별 AI 준비도·영향을 측정하는 글로벌 프레임워크,
둘째, 관광 분야 AI 활용 가이드라인과 툴킷,
셋째, 윤리적·포용적·책임 있는 AI 도입 원칙을 담은 각료 선언문이다.
OECD 역시 “관광에서 AI 활용을 촉진하면서도, 소비자 보호와 노동자 보호, 중소기업 지원을 동시에 고려하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지금은 “AI를 쓸까 말까”의 단계가 아니라 “어떤 규칙과 감시 아래에서 쓸 것인가”를 논의해야 할 때다.
기술 도입 속도에 비해, 이를 관리할 제도와 윤리가 따라오지 못하면 관광은 또 한 번 새로운 불신의 파도를 맞게 될 것이다.
[관광 일자리의 미래 질문]
AI는 관광의 많은 일을 바꿀 것이다. 수요 예측과 가격 결정, 객실 배정과 인력 스케줄링, 마케팅과 고객관리까지,
이미 여러 연구는 AI가 수요 변동 예측과 요금 최적화, 인력 배치에서 기존 방식보다 훨씬 높은 정확도와 효율을 보여준다고 보고한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과 수익 증대로 이어지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내 역할이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불안을 낳는다.
앞선 칼럼 35에서 살펴본 것처럼, 관광은 이미 구조적인 인력 부족과 낮은 임금, 높은 이직률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상황에서 AI와 자동화는 “사람을 더 줄여도 되는 기술”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더 나은 조건과 역할로 일할 수 있도록 산업을 재설계할 기회”가 되어야 한다.
OECD와 UNWTO도 AI 도입 시 관광 노동자에 대한 재교육·직무 전환·사회보장 강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결국 질문은 다시 사람에게 돌아온다. AI가 고객의 취향과 동선을 정교하게 읽어내는 시대에, 관광 종사자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렇게 답하고 싶다. AI가 정보를 정리하고 선택지를 좁혀 준다면, 사람은 그 사이에서 “이곳만의 이야기”와 “이 사람만의 사정”을 읽어 내는 역할에 더 집중해야 한다.
AI가 일정과 가격을 최적화한다면, 사람은 그 일정이 지역사회와 환경, 다음 세대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지 고민하는 일을 맡아야 한다.
본 기고를 마치며, 이렇게 적어 본다.
AI는 관광의 미래를 “자동화된 서비스”로 만들 수도 있고, “더 깊이 이해받는 경험”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 갈림길에서 중요한 것은 알고리즘의 성능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관광을 원하고 어떤 일자리를 지키고 싶은지에 대한 집단적인 선택이다. AI가 아닌 우리가 그 선택을 해야 한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