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칼럼 30] 워케이션, 누구의 자유이며 누구의 부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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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인사이트

[관광칼럼 30] 워케이션, 누구의 자유이며 누구의 부담인가

관리자 2026-08-17 조회수 42


재택근무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된 뒤, 여행의 풍경도 조용히 바뀌었다. 

휴가를 내고 짧게 다녀오는 여행 대신, 몇 주에서 몇 달씩 머물며 “일과 여행을 같이 하는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워케이션(workation)·블레저(bleisure)·플렉스케이션(flexcation)이라는 낯선 단어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관광산업의 중심어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글로벌 통계를 보면 이 변화의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다. 

워케이션 여행 시장은 2025년 기준 약 635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며, 2034년에는 2,438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성장률 14.8%는 전통 관광 성장률(3~5%)을 크게 웃돈다. 

2023년 평균 2.1주였던 워케이션 체류 기간은 2026년 중반에는 4.3주로 늘었고, 일부 조사에서는 원격 근로자의 35~40%가 이미 한 번 이상 워케이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제 워케이션은 ‘실험’이 아니라, 새로운 기본값이 되고 있다.

 

 

[일과 여행의 경계가 흐려질 때 생기는 일]

 

워케이션은 말 그대로 work와 vacation을 합친 단어다. 

집이나 사무실 대신 휴양지·도시·자연 속에서 일정 기간 머물며 원격으로 업무를 이어가는 방식을 뜻한다. 

출근 대신 시간대에 맞춰 온라인에 접속하고, 업무가 끝난 뒤에는 새로운 도시를 걷거나 바다를 바라보거나 현지 문화를 경험한다. 

어떤 이에게 워케이션은 번아웃을 늦추는 숨구멍이고, 어떤 이에게는 ‘일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세계를 경험하는 타협안이다.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기대도 달라졌다. 

2025년 조사에 따르면 원격·하이브리드 근무가 가능한 직원의 70% 이상이 향후 1년 내 워케이션을 떠나고 싶다고 답했고, 실제로 35~40%는 이미 워케이션을 경험했다. 

또 다른 글로벌 리포트에서는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향후 휴가에 일을 일부 섞는 블레저나 워케이션을 계획하고 있다고 나왔다. 

기업 역시 변화에 적응하며, 58%가량의 고용주가 일정 기간 해외에서의 원격근무를 허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과 여행의 경계는 점점 더 흐려지고 있다.

 

 

[도시와 목적지가 보는 워케이션]

 

워케이션은 목적지 입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수요다. 

체류 기간이 길고(평균 2~6주, 가족의 경우 8주 이상), 숙박·식비·공유오피스·교통 등 지역 내 소비가 일반 관광객보다 30~55% 많다는 분석이 반복해서 나온다. 

2024년 기준 장기 숙박(28일 이상) 예약의 약 20%가 원격근무와 연관되어 있고, 일부 도시는 전체 장기 예약의 3분의 1 이상이 워케이션·디지털 노마드 수요로 추정된다.

 

그래서 세계 여러 도시가 앞다투어 ‘워케이션 친화 도시’를 자처하고 있다. 

국제 워크플레이스 그룹(IWG)의 2025년 ‘Work Anywhere Barometer’에서 도쿄는 전 세계 워케이션 도시 1위를 차지했고, 서울·로마·파리·발레타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이 지수가 본 요소는 단순 관광 매력만이 아니다. 

인터넷 속도, 공유오피스 밀도, 치안, 교통, 문화생활, 행복지수, 지속가능성까지 ‘일과 생활’을 함께 평가했다. 

조사에 참여한 하이브리드 근로자의 86%가 “유연한 업무공간의 존재 여부가 목적지를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답했다는 점은, 이제 도시가 ‘일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관광전략의 일부가 되었음을 말해 준다.

 

 

[비자와 제도의 변화, 디지털 노마드라는 손님]

 

워케이션과 디지털 노마드 확산은 이민·비자 제도도 흔들고 있다. 

유엔 관광기구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목적지의 거의 절반이 디지털 노마드 비자(Digital Nomad Visa) 또는 유사 제도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비자는 “해외 기업이나 고객을 상대로 원격으로 일하는 외국인이, 현지 고용관계 없이 일정 기간 거주하며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체류 자격”이라는 점에서 기존 취업비자와 다르다.

 

예를 들어, 네팔은 1회 5년 복수입국이 가능한 디지털 노마드 비자 도입을 예고하면서, 월 1,500달러 이상 소득 또는 2만 달러 이상 예치금, 10만 달러 이상의 건강보험, 장기 체류 시 5% 소득세 부과 등 세부 요건을 제시했다. 

비자 소지자는 현지 은행 계좌 개설, 차량 등록, 장기 임대 계약까지 허용받으며, 장기 체류 고소득 노동자를 새로운 관광·투자 자원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여러 국가는 디지털 인프라와 생활 환경을 정비하며 “일하는 여행자”를 새로운 핵심 타깃으로 삼고 있다.

 

 

[기회만큼 커지는 질문들]

 

관광산업 입장에서 워케이션은 분명 기회다. 

비수기에 장기 투숙객을 유치하고, 객실 점유율을 안정시키며, 지역 경제에 더 많은 소비를 가져다주는 새로운 수요원이기 때문이다. 

일과 여행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관광은, 기후·환율·정세 변화에 따른 단기 수요 변동을 완충해 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워케이션과 디지털 노마드의 확산은 동시에 여러 질문을 남긴다.

첫째는 노동의 경계에 대한 문제다.

워케이션은 “일과 삶의 균형을 높인다”는 슬로건과 함께 홍보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휴가에도 완전히 쉬지 못하는 구조”를 정상화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보고된 연구들에서는 일부 참가자가 업무·시간·성과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오히려 번아웃을 경험하거나, 시차·환경 변화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기도 한다.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어디서든 일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뒤바뀔 위험이 있다.

 

둘째는 지역사회와 주거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다.

장기 체류 워케이션 수요는 도심·해변·관광지의 중장기 임대료를 끌어올리고, 에어비앤비 등 단기임대 플랫폼 수를 늘려 지역 주민의 주거비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이미 여러 도시에서 디지털 노마드·장기 관광객 증가와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사이의 상관관계를 지적하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앞선 칼럼에서 살펴본 것처럼, 어떤 도시는 이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 단기임대 일수 제한, 관광세 부과, 특정 구역 단기임대 금지 같은 규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워케이션은 도시경제를 살릴 수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도시에는 “보이지 않는 과잉관광”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는 불평등의 문제다.

워케이션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대체로 디지털 기반 고소득 전문직, 유연근무가 가능한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다. 

물리적으로는 국경을 넘나들지만, 계층적으로는 특정 집단에 집중된 이동성(mobility)이 새로운 격차를 낳을 수 있다. 

여행이 ‘누구에게나 열린 경험’이 되기보다, 특정 계층이 더 자주·더 길게·더 멀리 움직일 수 있는 특권으로 굳어질 가능성도 있다. 

관광정책이 워케이션을 적극 유치하려 할수록, 동시에 접근성·포용성·지역사회와의 균형에 대한 고민도 함께 따라가야 하는 이유다.

 

 

[이제는 “어디서 일할 것인가”까지 설계할 때]

 

본 기고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워케이션을 단순 유행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원격과 하이브리드 근무가 구조적으로 자리 잡은 한, 일과 여행의 결합은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이 흐름을 “방치할 것인가, 설계할 것인가”이다.

 

도시와 지역, 기업이 워케이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면 몇 가지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한다.

 

- 우리 지역에서 장기 체류가 늘어날 때, 주거와 생활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 워케이션·디지털 노마드 정책을 설계할 때, 어떤 소득·체류 기간·세금·책임 구조를 고려할 것인가.

- 지역 주민·기존 관광객·워케이션 인구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공간과 규칙은 무엇인가.

- 이 흐름에서 소외되는 지역·직종·계층은 누구이며, 그들에게는 어떤 보완책이 필요한가.

 

 

관광은 늘 이동의 자유를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누구의 자유인가, 누구의 부담인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워케이션은 분명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다. 

동시에, 준비되지 않은 도시와 산업에는 조용한 압박과 불균형을 남길 수 있다.

 

결국, 워케이션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일과 여행, 개인과 공동체, 자유와 책임 사이의 선을 어디에 그을지에 대한 집단적인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당신의 도시와 조직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제는 “어디로 떠날 것인가”뿐 아니라, “어디서 일하며 어떻게 머물 것인가”까지 함께 설계해야 할 시간이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