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칼럼 29] 관광은 ‘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갈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의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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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인사이트

[관광칼럼 29] 관광은 ‘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갈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의 권리다.

관리자 2026-08-14 조회수 37


관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습관처럼 “누가 더 많이 오느냐”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또 다른 질문이 보인다. 이 도시와 이 나라에서, 아직도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 시·청각장애인, 고령자, 유모차를 끄는 부모, 만성 질환과 정신적 어려움을 안고 사는 수많은 시민들. 

이들에게 관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성의 문제다. 갈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한 관광은 이미 오래된 모델이다.

 

UN 관광기구(UN Tourism, 구 UNWTO)는 일찍이 ‘모두를 위한 관광(Accessible Tourism for All)’을 인권과 지속가능발전의 관점에서 정의해 왔다. 

2013년 채택된 ‘모두를 위한 관광에 대한 권고’는 장애인권리협약과 유니버설 디자인 원칙을 반영해, 물리적 환경·교통·정보·커뮤니케이션·서비스 전 과정에서 장애인과 고령자가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 틀을 제시했다. 

2021년에는 관광·관련 서비스 전 분야를 포괄하는 최초의 국제표준 ISO 21902가 제정되었고, 이는 “모든 연령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동등하게 관광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요구사항과 지침”을 담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처럼 ‘접근성’을 관광의 필수 요소로 다루는 데는 이유가 있다. 

UN Tourism과 파트너 기관들이 정리한 보고서를 보면, 접근 가능한 관광은 성수기 혼잡을 줄이고 비수기 수요를 늘리는 ‘게임 체인저’로 평가된다. 

장애인·고령자·만성질환자와 그 동반자들로 구성된 시장은 규모가 크고, 한번 신뢰를 얻은 목적지와 사업장을 반복 방문하는 충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단지 복지 차원이 아니라, 지역과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이라는 의미다.

 

자연관광 영역에서도 흐름은 같다. 

2024년에 발간된 ‘자연지역에서의 접근성과 포용적 관광 개발’ 보고서는, 자연 보호구역·국립공원·해변·산책로가 여전히 접근 취약계층에게 높은 장벽을 제공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동시에, 세계 각지에서 장애인·고령자도 이용할 수 있는 숲길·전망 데크·해변 이동로·체험 프로그램을 설계한 사례를 묶어, “자연을 모두에게 연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자연은 특정한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들만 누리는 자원이 아니라, 모두의 공공재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한국의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15년부터 ‘열린관광지(Barrier-Free Tourist Destination)’ 사업을 통해 관광 약자를 위한 환경 조성을 본격화했다. 

2015년 6개소로 시작된 이 사업은 2024년까지 누적 182개 관광지로 확대되었고, 2024년에는 공모 경쟁률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30개소가 새로 선정되었다. 

이 사업은 단순 경사로 설치를 넘어, 보행로·램프·화장실·안내체계 등 물리적 환경 개선과 더불어 체험 콘텐츠를 함께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5년은 우리나라 ‘배리어프리 관광정책’이 10년을 맞는 해였다. 

2014년 관광진흥법 개정으로 장애인의 관광 활동권이 법에 명시되면서 본격화된 이 정책은, 이제 복지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지역 브랜드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년 동안 열린관광지로 지정된 약 6.6%의 주요 관광지는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다. 

자연지역 접근성과 포용적 관광 사례로 UN Tourism에 의해 ‘우수사례’로 선정되고, 2022년에는 PATA 테마 어워드에서 ‘Tourism for All’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정책의 방향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개별 관광지의 시설 개선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여행 전 과정(travel chain)의 접근성’을 높이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2022년부터 추진 중인 ‘배리어프리 관광 연계성 강화사업’은 정보·교통·관광·서비스 전 단계를 잇는 배리어프리 존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6년 대상지로 선정된 수원시는 3년간 국비와 지방비를 매칭해, 교통·관광 인프라 개선과 정보 제공, 서비스 연계를 포함하는 배리어프리 관광특화 구역을 조성할 계획이다. 

관광지를 넘어서 도시 전체를 하나의 ‘접근 가능한 여행 경험’으로 바꾸겠다는 시도다.

 

서울시 역시 2018년 ‘배리어프리 관광도시 계획’을 발표하며, 관광을 복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2018~2022년 5년간 약 152억 원을 투입해 주요 관광지 시설 개선, 장애인 관광버스 확충, 배리어프리 인증제 도입, 장애 유형별 맞춤 코스 개발, 접근성 정보 제공, 배리어프리 관광지원센터 설립, 전문 인력 양성 등을 추진한 이 계획은 “관광을 누릴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겠다”는 지방정부 차원의 선언이었다. 

서울은 29개 배리어프리 관광코스를 기반으로, 향후 매년 최대 10개 신규 콘텐츠를 개발하고, 관광취약계층의 여행을 공공-민간 협력으로 지원하는 계획도 병행하고 있다.

 

국제 표준 ISO 21902는 이런 움직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도구다. 

이 표준은 정책·전략·인프라·상품·서비스 전 영역에서 ‘모두를 위한 관광’을 구현하기 위한 요구사항과 권고를 제시하며, 공공·민간 모든 관광 공급망 주체를 대상으로 한다.

예를 들어, 해변이 ‘접근 가능’하다고 인정받으려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샤워·화장실·이동 경로가 필수이며, 자연 환경 속 보행로는 연속적이고 단단한 바닥, 적절한 표지, 사전 정보 제공을 갖추어야 한다. 

또, 관광 관련 서면 안내는 쉬운 언어와 논리적 구성, 적절한 이미지와 상징, 대비가 분명한 색상과 읽기 쉬운 글꼴을 사용해야 한다는 가이드도 포함하고 있다.

 

UN Tourism과 파트너들은 이 표준을 실제 현장에서 쓰도록 돕기 위해, 항공·철도·크루즈·도로교통 등 교통 부문과 여행사·투어오퍼레이터 등 중개 부문을 대상으로 한 6종의 실무 가이드를 2024년에 연달아 발간했다. 

특히 2024년 9월 발표된 ‘ISO 21902 적용 가이드 – 여행사·여행업자를 위한 권고’는, 예약·상담·상품 설계·현장 운영 전 단계에서 접근성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 실행 방법을 제시한다. 

이는 “접근성은 시설관리자의 책임”이라는 오래된 인식을 넘어, 여행을 설계·중개하는 모든 주체의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여기까지가 ‘사실’이라면, 이제는 우리의 과제가 남는다.

 

본 기고에서 나누고 싶은 핵심은, 접근 가능한 관광이 더 이상 “소수자를 위한 선의”가 아니라, 관광의 기본 조건이라는 점이다.

인구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일시적·영구적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의 비율도 계속 늘고 있다. 누구나 일시적으로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끌거나, 시야와 청력이 떨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결국 ‘관광 약자’는 특정 집단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순간 우리 모두가 겪게 될 상태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우리는 언제까지 관광을 ‘건강하고 젊은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할 것인가.”

접근 가능한 관광을 잘하는 도시와 기업은 단지 착한 도시, 착한 기업이 아니다. 

더 오래, 더 넓게 선택받는 도시와 기업이다. 비수기와 평일, 나이가 들수록, 몸이 불편할수록, 가족구성이 달라질수록 계속 돌아오고 싶은 곳. 그것이 진짜 경쟁력이다.

 

관광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은, 결국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가고 싶은 사람만이 아니라, 갈 수 있어야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여행을 다시 설계하는 일.”

 

본 기고를 마치며, 이 문장을 우리 각자의 현장에 한번 대입해 보고 싶다. 

 

당신이 일하는 그 호텔, 그 여행사, 그 도시에서, 아직도 ‘문턱’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문턱을 낮추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하나라도 바꿀 수 있을까.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