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광은 오랫동안 ‘감(感)의 산업’으로 불렸다.
“여기쯤이면 사람이 몰릴 것 같다”, “올해는 이 테마가 뜰 것 같다”는 경험과 직관이 의사결정을 이끌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관광객은 검색과 예약, 결제와 이동, 후기까지 여행의 전 과정을 데이터로 남긴다.
더 이상 감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데이터에 맡길 수도 없다.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데이터는 어디까지가 도구이고, 어디부터가 위험한 착각인가.”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가 2021년 문을 연 ‘한국관광 데이터랩’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플랫폼이다.
이동통신, 신용카드, 내비게이션 같은 민간 데이터와 관광통계·관광실태조사 같은 공공 데이터를 한데 모아, 지역별 내·외국인 방문자 수, 이동·소비 행태, 거주지별 방문자 분포, 국가별 방한시장 동향 등을 한 화면에서 분석할 수 있게 한 관광 특화 빅데이터 인프라다.
말 그대로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여행하고 있는지”를 숫자로 읽을 수 있는 눈을 만들어 준 셈이다.
개설 1년 만에 수천 개 기관과 1만 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하고, 지방정부와 기업, 학계가 관광정책 수립과 비즈니스 전략 수립에 실제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데이터는 더 이상 중앙정부의 보고서용 자료가 아니라 현장의 언어가 되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신규 데이터 확충과 AI 기반 융합분석 서비스, 사용자 수준별 분석 기능 업그레이드를 거쳐 “통계 제공 플랫폼”에서 “분석 도구”로 진화했고, 2026년에는 방한·의료·한류·크루즈·국내·지역여행 등 6개 테마별 여정 기반 대시보드와 AI 해설사까지 도입되었다.
이제 데이터랩은 단순한 숫자 목록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요약해 주는 조용한 분석자 역할을 하고 있다.
관광정책의 언어도 변하고 있다.
디지털 뉴딜과 스마트관광 정책 문서들을 보면, “데이터 기반 과학적 의사결정”, “맞춤형 관광정보 제공”, “데이터 선순환 구조” 같은 표현이 반복된다.
스마트관광도시 사업은 ICT와 관광요소를 융합해 차별화된 경험과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누적된 정보를 분석해 콘텐츠와 인프라를 지속 개선하는 도시를 목표로 한다.
요약하면, “데이터를 통해 관광객을 더 잘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현장을 바꾸는 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여기까지는 분명한 진전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모든 도시가, 모든 사업자가 “빅데이터 기반”, “AI 분석”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중요한 질문이 흐려지고 있다.
데이터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고, 무엇을 보여줄 수 없는가.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것들은 무엇인가.
데이터가 강한 분야는 분명하다.
“어디에, 언제, 어떤 사람이, 얼마나 왔는가”를 읽는 데 데이터는 탁월하다.
통신 로그와 카드 매출, 내비게이션 경로는 인간의 기억보다 정확하게 이동과 소비의 패턴을 보여준다.
축제의 기간과 장소를 입력하면 방문객 수와 소비 규모를 자동으로 추정해 주는 기능, 읍·면·동 단위까지 세분화된 국내·외 방문자 흐름, 출발지·방문 목적·성연령별 특성까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도구들이다.
과거에는 “느낌상 줄었다·늘었다” 수준에서 논쟁하던 문제들이 이제는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될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약한 영역도 분명하다.
“왜 그들이 거기에 왔는가, 왜 그 경험이 좋았거나 나빴는가, 무엇을 다시 바꾸고 싶어 하는가” 같은 질문은 숫자만으로는 답이 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 텍스트 분석과 리뷰 분석이 어느 정도 정서의 방향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여전히 인터뷰와 관찰, 현장 종사자의 감각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데이터는 현상의 그림자를 보여줄 뿐, 그 안에 담긴 사람의 마음과 맥락은 해석의 여지가 남는다.
그래서 데이터와 현장은 반드시 만나야 한다.
관광의 데이터 전환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데이터 만능주의”와 “데이터 포기주의” 두 극단이다.
전자는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자칫 지역의 이야기와 관계, 주민의 목소리를 “잡음”으로 취급하게 만든다.
반대로, 데이터 포기주의는 “관광은 원래 감으로 하는 것”이라며 어떤 숫자도 보지 않으려는 태도다.
이 태도는 위기의 신호를 놓치고, 기회를 읽지 못하게 만든다.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 중간 지점이다.
데이터를 “의사결정의 출발점”이자 “현장을 다시 보는 렌즈”로 쓰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20대 여성 방문자가 갑자기 늘었다면, 데이터는 그것을 ‘사실’로 알려준다.
하지만 그 이유—새로 생긴 카페인지, 드라마 촬영지인지, SNS에서 뜬 포토스폿인지—는 현장과 온라인 정성 분석을 통해 다시 확인해야 한다.
반대로, 현장에서 체감하던 문제—“최근 가족 단위 손님이 줄었다”—를 데이터로 검증해 보면 실제 감소 폭과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있고, 다른 연령·국적과의 상대적 흐름도 읽을 수 있다.
데이터는 또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특정 지자체의 우리지역 관광상황판을 열어 보면, 방문객 대부분이 인근 광역시에 편중되어 있거나, 외국인 방문이 거의 없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또, 평일·비성수기 방문이 거의 없어 지역 상권이 주말에만 숨 쉬는 구조일 수도 있다.
이런 패턴을 읽어야만 “누구를 새로 초대할 것인가, 어떤 계절과 시간대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나온다.
데이터가 없으면 우리는 늘 “원래 그런 줄” 알고 지나친다.
앞으로 관광 데이터 환경은 더 입체적으로 변할 것이다.
한국관광 데이터랩에 도입된 AI 해설사는 수치를 요약해 주는 것을 넘어, 발생 원인을 추정하고 전략적 시사점을 제안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여정 기반 대시보드는 ‘여행 전–여행 중–여행 후’라는 실제 행동 흐름에 맞춰 관심도·이동·소비·반응 데이터를 한 화면에 엮어 보여준다.
K‑컬처 소셜미디어 분석은 국가별·키워드별 한류 체험 언급량을 제공해, 어떤 콘텐츠와 지역이 어떤 조합으로 소비되는지까지 읽게 만든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도, 마지막 문장은 사람에게 돌아온다.
데이터를 읽는 주체, 데이터를 해석하는 주체, 데이터를 행동으로 옮기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도 “이 도시에 사는 사람과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 무엇이 더 나은가”라는 질문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관광의 미래를 설계하는 알고리즘은 복잡할 필요가 없다.
“데이터로 현상을 정확히 보고, 현장에서 이유를 듣고, 다시 데이터를 보며 바꾸고, 그 변화를 사람과 나누는 것.”
이 단순한 순환이 잘 돌아갈 때, 데이터는 숫자가 아니라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적어 본다.
데이터가 읽는 여행길은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그 길 위를 걷는 것은 사람이고, 그 길을 다시 설계하는 것도 사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광의 빅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데이터 감각’이다.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