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뮤니티 기반 관광(CBT, Community-Based Tourism)은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학문적으로는 지역사회가 관광의 계획·개발·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그 이익이 공동체 전체에 돌아가도록 설계된 지속가능 관광의 한 유형으로 정의된다.
요약하면 “관광객이 남기고 가는 가치가 기업의 손익계산서에만 머무르지 않고, 마을의 살림살이와 공동체의 회복력까지 바꾸어 놓는 구조”를 지향하는 모델이다.
세계적 연구들을 보면 CBT는 빈곤 감소, 문화 보전, 생태·사회적 회복력 강화와 연결된 전략으로 점차 주류 개발 프레임 안으로 편입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원·역량·정책 지원의 부족, 명목상의 참여, 불안정한 거버넌스 같은 구조적 한계도 계속 지적된다.
결국 성공 여부는 “어떤 개념을 도입했는가”보다 “어떤 과정으로 주민 참여와 거버넌스를 만들었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이 논의를 가장 또렷하게 현실로 만든 사례가 바로 ‘관광두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13년 “시설 투자와 방문객 수 증가만으로 관광산업의 성공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주민이 직접 숙박·식음·기념품·여행·체험 사업체를 창업·운영하도록 지원하는 주민주도형 관광모델을 실험했다.
10여 년 동안 130여 개 지자체에서 관광두레 PD 180여 명과 주민사업체 900여 개가 발굴·육성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매출 수십 배 성장, 수천 명 단위 체험객 유치, 지역 일자리 창출 등 눈에 보이는 성과도 축적되고 있다.
강원 정선의 간이역 카페 ‘나전역’, 평창 청년들이 운영하는 주민여행사 ‘와우미탄협동조합’, 양양 서퍼 문화와 연결된 ‘서프시티협동조합’, 폐교를 리모델링한 영광 ‘서로마을’, 독일마을 행복공동체와 속초의 크래프트 맥주 협동조합 등은 각자의 방식으로 “주민이 주인인 관광”의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로 거론된다.
단순히 ‘착한 관광’ 슬로건을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시장에서 매출과 방문객, 협업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커뮤니티 기반 관광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는 거버넌스다.
제주 세화마을을 사례로 한 연구에서 주민들은 지역사회 기반 관광 거버넌스 형성 요소 가운데 “참여성”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고, 그 다음을 파트너십과 제도화로 보았다.
세부 항목에서는 전문성·자발성·공동체 의식이 핵심으로 평가되었다.
또 다른 연구는 CBT 거버넌스의 원칙으로 투명성, 포괄성, 공정성, 회복력, 합법성, 연결성, 책임성 7가지를 제시하며, 이해관계자 간 조정과 신뢰 구축이 지속가능한 성과의 조건임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가”만큼이나 “누가 어떻게 함께 결정해 가는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관광두레의 설계도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각 지역의 관광두레 PD는 공무원도, 단기 용역도 아닌 현장의 컨트롤타워로서 주민사업체 발굴·교육·컨설팅·네트워킹을 묵묵히 지원하고, 주민사업체는 협동조합·마을법인·주식회사 등 다양한 형태로 자립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갈등과 시행착오는 불가피하지만, “행정이 기획·집행·수혜를 모두 가져가는 구조”에서 “주민이 기획·집행·성과를 나누는 구조”로 천천히 축을 옮기는 효과가 나타난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모든 마을이 관광두레만으로 살아날 수는 없고, 모든 주민이 관광을 하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다.
자발성과 전문성이 균형을 잡지 못하면, 몇몇 핵심 인력에게 과부하가 걸리거나 사업이 특정인 중심으로 쏠릴 수 있다.
또, 시장성과 공동체 가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커뮤니티 기반 관광은 “정답이 검증된 모델”이라기보다, 각 지역이 스스로의 속도와 방식으로 조정해 가야 하는 “과정형 전략”에 가깝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지역관광의 지속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곳일수록, 결국 주민참여와 커뮤니티 기반 관광의 언어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시설과 행사만으로는 지역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
주민이 기획에 참여하고, 의사결정 테이블에 앉고, 책임과 이익을 함께 나누는 구조가 생길 때 비로소 “관광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
지속가능한 지역관광의 다음 문장은 행정도, 기업도 아닌 주민의 입으로 쓰인다.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의 지역에서, 관광의 주어는 누구인가.
[이강일 | 관광산업 연구자·저자. 관광의 미래를 읽고, 현장의 길을 설계하다.]